“못배운 한 학교세워 풀련다”/경남 양산에 전문대 설립한 오근섭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구두닦고 신문팔아 자수성가/“불우 청소년들에 빛이 되겠다”
국졸학력으로 구두닦이와 신문배달·경찰서 사환 등 역경을 견뎌낸 40대가 평생을 홀몸으로 뛰어 번 재산으로 전문대학을 설립,젊은시절 꿈을 이루게 됐다.
고아 아닌 고아출신인 오근섭씨(45·사진·경남 양산군 양산읍 북부리 162의 2)가 그 주인공.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었던 오씨가 양산읍 명곡리 산 105의 1 12만평에 세운 양산전문대는 올해 첫 입학생 5백20명(야간 40명)을 모집,개교하게 됐다.
『평생 한이 배움이었지요. 7세때 부모가 이혼해 뿔뿔이 헤어지면서 홀로 조부모의 손에 맡겨져 어린시절 남들이 배울때 배우지 못한 것이 오늘날 꿈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국민학교 6년때 같은 학교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며 언젠가 버스회사를 차려 돈이 모이면 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양산국교 졸업과 함께 양산경찰서 사환으로 취직한 오씨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외로운,그러나 꿈을 간직한 삶을 시작했다.
오씨는 경찰서에서 5년동안 일하며 모은 월급과 구두를 닦아 푼푼이 모은 2만원으로 그때까지 단칸셋방살이를 못 면하고 있던 조부모에게 양산군 중부동의 집 한채를 사드리고 이듬해인 67년 군 입대와 동시에 월남전 파병을 지원했다.
월남지원 역시 돈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제대 당시 1백만원을 겨우 손에 쥐게된 그는 묵 도매상·계란장사·그릇장사 등을 닥치는대로 해오다 70년 쌀장사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꿈의 실현 가능성을 엿보게 됐다.
오씨는 신용과 성실을 상거래의 신조로 삼아 경남도내는 물론이고 강원·제주도 등 전국을 누비며 다녔다.
『쌀장사 수입으로 틈틈이 고향 양산의 야산을 사들인 것이 학교건립의 기반을 닦는 계기가 됐습니다.』
80년대 들어 땅값이 오르면서 오씨가 8년동안 매입한 명곡리 일대 잡종지 10여만평의 값이 뛰었고 이 자리를 대학설립의 터로 삼았다.
오씨는 전문대 설립을 결심,83년부터 경영해오던 평화관광회사(울산·버스 60대)와 생업인 북안쌀가게(양산) 등을 모두 정리해 지난해 6월 대학건립의 첫 삽질을 했다.
오씨는 현재까지 50억원을 투입,본관과 강의실 1동을 우선 지어 이달중 개교하며 95년까지 2백억원을 투자해 16개학과 2천5백60명 정원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올해 뽑는 학과는 전자계산·산업디자인·식품영양 등 6개과.
그는 이외에도 양산군내 32개 국교에 세종대왕·이순신장군의 동상을 세워준 것을 비롯,10년전부터 불우청소년들에게 남몰래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오씨는 『없는 자,못배운 자에게 너무 각박한 것이 우리사회지만 열심히 살고자 하는 불우청소년들에게 조그마한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양산=김형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