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체코」 양분 위기(국제정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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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집권 시민포럼/시장경제 도입싸고 좌우 갈려/의원·각료 동수/연일 티격태격
89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벨벳혁명」의 주역이며 현재 집권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시민포럼이 분열위기에 봉착했다.
시민포럼이 분열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경제정책에 대한 내부 대립 때문. 급진적 시장경제도입을 주장하는 현 지도부와 국민생활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는 「자유그룹」이 팽팽하게 맞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이들 양대세력간 대립이 표면화한 것은 지난 1월 열렸던 시민포럼 전체대회로,이 자리에서 바츨라프 클라우스 의장(연방재무장관)이 이끄는 주류파가 자유그룹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도우파 정당으로의 탈피」를 결의한 것이 발단이 됐다.
클라우스의장의 의도는 급진경제개혁을 지지하는 강력한 정권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었으나 공산통치시절 시민운동가들이 주요세력을 이루고 있는 자유그룹은 주류파의 행동이 시민포럼의 결성취지에 어긋난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비단 경제정책뿐 아니라 시민포럼이라는 조직의 존재방식에 대해서도 커다란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주류파는 시민포럼을 사실상 정당으로 끌고나가려는데 반해 자유그룹은 설립 당시 그대로 시민운동조직으로 남기를 주장한다.
자유그룹은 2월초 새로운 조직결성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주류파는 이를 「체코식 이혼」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양자간 분열은 이제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것이 돼가고 있다.
시민포럼은 89년 11월 체코에서 시민·학생들의 반공 민주화데모가 한창일때 당시 체코 반체제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바츨라프 하벨 현 대통령등이 중심이 돼 결성됐다.
시민포럼은 당시 공산당정권 타도·민주화실현을 공동목표로 반체제 인권운동가들로부터 공산당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인사들로 구성됐으며 지난해 총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압승,사실상 집권정당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후반부터 경제개혁의 방향을 놓고 소비억제·급진개혁을 주장하는 우파 및 실무파와 국민생활 개선을 중시하는 좌파 양세력이 대립했다.
이 와중에서 유명한 「77헌장」멤버를 중심으로 하는 좌파 및 시민운동파는 시민포럼내 분파조직인 자유그룹을 결성했다.
이들 양세력은 그 규모에 있어서도 거의 백중지세로 연방의회 의원수에 있어서도 각각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연방정부 각료수에 있어서도 전체 10명중 각각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어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시민포럼의 상징인 하벨 대통령은 양파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입장을 지키고 있으며,슬로바키아 출신의 마리안 찰파 연방총리 역시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폴란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자유노조연대가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노동자세력과 타데우스 마조비예츠키가 이끄는 지식인세력이 끝내 갈라지고 말았던 것처럼 체코의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시민포럼도 이제 같은 운명을 맞고 있는 것이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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