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문제(걸프 종전후의 세계: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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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랍권 분열로 해결 청신호/이라크 편든 PLO 입지 약화/전승 아랍국 신세진 미,이스라엘 설득 나설 전망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은 걸프전쟁 마무리를 위해 금주 중동을 순방하면서 맨먼저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이것은 이번 이라크에 대한 다국적군의 승리에 있어 이스라엘이 기여한 결정적 역할에 대한 평가인 동시에 아랍­이스라엘 관계,특히 팔레스타인인 문제에 대한 새롭고도 각별한 국제적 관심표명으로 풀이된다.
중동에서 발생한 모든 반목과 대립은 결국 팔레스타인문제에서 만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팔레스타인문제는 반드시 중동분규의 핵심적인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오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흔히 「6일전쟁」으로 알려진 제3차 중동전쟁이 끝난 직후부터다.
당시 아랍연합군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이스라엘은 요르단의 요르단강 서안지역(웨스트뱅크),이집트의 가자지구 및 시나이반도,시리아의 골란고원 일부를 점령,점령지 주민들에 대한 철권통치를 펼쳤다.
이 가운데서도 1백7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는 웨스트뱅크지역이 태풍의 눈으로 남게된 것이다.
팔레스타인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환원시킨 것처럼 웨스트뱅크지역을 요르단에 돌려주면 되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웨스트뱅크지역은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선 사이에 넓게 자리잡고 있어 이스라엘족에서 볼 때는 그들에 대한 아랍권의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웨스트뱅크지역을 포기한다면 「적을 코앞에 두는 격」이 되는 셈이어서 웨스트뱅크 고수문제는 이스라엘엔 「사활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번 걸프전쟁후 ▲아랍국가의 이스라엘 생존권 인정 ▲장거리미사일등 대량살상용 무기제거 등 항구적인 지역평화를 위한 신질서가 마련되기 전에는 완전철수가 곤란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팔레스타인문제의 해결전망이 마냥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 등 전승 아랍국들이 이교도를 끌어들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전쟁참가에 대한 「대가」로 미국등 서방국가들에 대해 팔레스타인문제의 우선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 아랍국가들에 크게 의존했던 미국으로서는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든 들어주어야 할 입장이어서 결국 이스라엘에 대한 「설득외교」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와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압통치를 비난하는 국제적인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이스라엘엔 또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한편 대 이스라엘 적대세력의 힘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도 팔레스타인문제 해결의 청신호다.
이번 걸프전쟁은 아랍권의 분열을 극적으로 촉진시킨 결과를 낳았다.
이제는 아랍대의를 외치기만 해서는 아랍의 전체역량을 결집시키기 어렵게 된 것이다.
더욱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기구라고 할 수 있는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약화가 예상되는 만큼 이스라엘의 부담은 더욱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PLO의 약화는 PLO가 확실한 친이라크 세력으로 돌아서면서부터 예상돼 오던 일이기는 했다.
PLO의 큰 재정적 후원자였던 전승 아랍산유국들이 이제 PLO를 백안시하게 됐을뿐만 아니라 PLO 운영기금에서 큰 몫을 차지했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로부터의 송금도 전승산유국들의 태도여하에 따라 크게 위협받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PLO의 약화는 곧 PLO의 분열→현실주의자인 온건파들의 득세→대 이스라엘 평화공존 모색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아랍권의 분열 내지 약화는 이스라엘의 위기감을 덜어주고 결국 평화협상 테이블로 이스라엘을 끌어낼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이스라엘 노동당의 페레스 당수는 『걸프전쟁으로 이스라엘 대 아랍의 대립관계에 변화가 생긴 지금이야말로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과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밝혀 팔레스타인 문제해결의 전망을 한층 밝게해 주고 있다.<암만=진세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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