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밀월」 끝날 가능성/걸프전 처리놓고 “불협화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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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의 중재 노력에 못마땅/미/동서냉전 재현땐 세계평화 “흔들”/미 패권주의 부활 경계심/소
걸프전 지상작전이 다국적군의 압도적 우세로 전개되면서 미국은 이번 전쟁을 완승까지를 목표로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지상전 시작에 앞서 이라크와 접촉해 평화안을 도출하고 이로써 이라크측에 「명예로운 휴전」을 안겨주기 위해 노력해온 소련엔 일종의 「패배」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후 소련은 유엔에서 이라크에 대해 쿠웨이트로부터 무조건 철수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무력사용에 동의하는등 미국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왔다.
이같은 관계는 유엔안보리에서 대 이라크 제재결의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소련이 미국에 적극 협조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다만 전쟁수행과정에서 소련은 이라크와의 과거 특수관계를 고려,다국적군에 참여하지 않는등 소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전쟁진행과정에서 미국이 전쟁 전체를 주도할 뿐 아니라 전쟁목표 또한 쿠웨이트 해방이라는 유엔결의안의 한계를 넘어 이라크의 군사적 무력화,후세인 타도 등으로 확대하면서 소련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련은 이라크의 완전궤멸로 몰고갈 것이 뻔한 다국적군의 지상전 개시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라크와 협상을 통한 평화안중재에 적극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중재한 두가지 평화안(8개항 및 수정 6개항)은 미국에 의해 완전묵살당했을 뿐만 아니라 부시 대통령은 마치 자신이 제시한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이 지나길 기다리기라도 한듯 철수시한에서 8시간 지난 24일 새벽 공격을 개시했다.
지상전 개시후 3일째인 26일 소련은 다시 한번 이라크와 접촉,후세인으로부터 쿠웨이트로부터 무조건 완전철수 수락을 받아내 이를 유엔안보리에 제출하고 유엔이 다국적군의 작전을 중지시켜주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이같은 제안마저도 26일 미국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말았으며 부시 대통령은 이제 이라크군의 완전항복을 요구하는 야심적이고 응징적 종전조건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소련의 외교가 이처럼 무력함을 보이자 소련국내 특히 보수강경파로부터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수파들은 고르바초프의 이른바 신사고외교가 서방측에 지난번 동유럽에 이어 이번엔 중동을 넘겨주고 있다고 비난하고,과거 소련의 오랜 맹방인 이라크를 미국이 마음대로 유린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최근호에서 미국은 쿠웨이트 해방이라는 미명하에 중동에서 새로운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며 미국의 진정한 목표는 중동의 석유자원 장악에 있다고 비난했다.
이같은 소련의 국내여론을 반영하듯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26일 소련과 미국의 관계가 「아직까지는 깨지기 쉬운 관계」라고 지적하고 『미국은 지금까지 양국이 달성한 것들을 깨지 말라』고 경고,미국의 행동에 대한 소련의 불만을 표시했다.
현재로선 소련이 군사력을 동원,다국적군의 행동을 방해할 가능성은 극히 작다. 그러나 만약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완전 궤멸시키는 상황까지 간다면 소련은 군사적 영향력 행사를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56년 수에즈전쟁 당시 영·프랑스·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나세르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자 소련은 미국과 함께 개입,영·프랑스에 대해 핵무기사용 위협까지 하면서 이집트를 구한적이 있다.
한편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다. 미국내 보수파들은 소련이 이라크와 평화안을 마련,중재에 나선 것을 「비열한 행동」이라고 비난한다.
이들은 소련의 소위 평화안이 이라크를 파멸로부터 구원,유지함으로써 최근 부쩍 가까워지고 있는 이란과의 관계를 한데 묶어 중동에서 소­이란­이라크 3국의 강력한 축을 형성하려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들은 또 이렇게 될 경우 장차 중동에는 친소·친미·양대 국가군이 형성돼 중동판 동서냉전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미국은 이번 걸프전에서 비단 쿠웨이트해방 뿐 아니라 이라크를 완전 무력화시켜 소련의 기도를 분쇄,전후 중동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미국의 구도대로 형성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때 동서냉전 종식후 첫번째 국제분쟁인 이번 걸프전은 앞으로 진행방향에 따라 모처럼 맞은 안정된 국제질서를 다시 한번 뒤흔들 것으로 보이며,더 나아가 세계평화를 크게 위협할지도 모른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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