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아, 너 없었으면 졌다" 남자배구 카타르 꺾고 결승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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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와의 준결승전에서 문성민이 강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는 모습을 김호철 감독(右)이 지켜보고 있다. [도하=연합뉴스]

"야구.축구.농구에 이어 남자 배구마저 무너진다면…."

14일(한국시간) 남자배구 준결승전이 벌어진 도하 알라얀 체육관. 한국 응원단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국은 홈팀 카타르에 2세트 중반까지 끌려가고 있었다.

카타르는 체육관을 가득 메운 5000여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1세트를 27-25로 따고 2세트도 앞서갔다. 카타르의 완승으로 가는 분위기였다. 주포 이경수(LIG)의 공격은 상대 블로커에 걸리거나 네트를 넘어가지 못했다. 2세트까지 공격 성공률은 30%대를 밑돌았고, 서브가 상대 코트로 넘어간 것 자체가 고작 1개였다. 이란과의 8강전에서 펄펄 날던 신진식(삼성화재)도 이날은 몸놀림이 둔했다.

2세트 12-13으로 뒤진 상황에서 김호철 감독이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신진식을 빼고 대표팀 막내인 문성민(20.경기대)을 넣었다. 이때부터 경기 흐름이 확 바뀌었다. 문성민은 물 만난 고기처럼 코트를 휘저으며 연속해서 백어택 2개와 강서브로 3점을 이끌어냈다. 20-18로 뒤집은 상황에서는 다시 강스파이크와 서브 득점으로 22-18로 점수 차를 벌렸다. 라이트 후인정(현대캐피탈)의 공격에 의존하던 한국 공격은 완전히 풀렸고, 다른 선수들의 몸놀림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굳었던 벤치의 얼굴도 서서히 풀려 갔다. 3, 4세트는 한국의 일방적인 페이스였다. 문성민이 한국 최고의 거포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김호철 감독은 문성민의 등을 두드리며 "네가 최고다. 경수보다 100배 낫다"며 "너 아니었으면 졌다"고 격려했다.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도 "어린 선수가 상상 외로 잘 해줬다. 투지도 좋았고, 거침없는 공격도 칭찬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세호(강남대 교수) KBS 해설위원은 "오늘 경기로 누가 한국의 최고 공격수인지 확실하게 가려졌다"고 말했다.

문성민은 2세트 중반부터 뛰었음에도 알토란 같은 14점을 올리며 3-1 역전승의 1등 공신이 됐다. 65%의 공격성공률은 팀 내 최고였고, 고비 때마다 터져나온 순도 높은 공격은 가점을 주기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문성민은 "형들이 몸이 무거워 보여 저라도 분위기를 띄워보려 한 건데 공격이 잘 풀렸다"고 겸손해 했다.

도하=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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