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시간과 「공격명령」/진창욱 외신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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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상전을 피해보려는 관계국들의 노력은 개전직전까지 도처에서 숨가쁘게 진행됐다.
걸프전쟁이 지상군 전면공격이라는 대전환의 분수령을 맞은 것은 23일 정오(미 동부시간·한국시간 24일 오전 2시)였다.
23일 정오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못박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 시한이다.
미국이 제시한 철수시한은 철군이냐 전쟁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부시 대통령의 비타협적이고 일방적인 요구와 이의 수락여부를 밝혀야 하는 후세인 대통령의 막다른 골목에 선 심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전세계의 이목은 후세인이 과연 23일 정오전에 평화를 위한 철군을 발표하느냐에 쏠려 있었다. 당연히 전세계 언론도 시한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시계바늘에 시선을 못박고 있었다.
한국시간 24일 오전 2시. 미 ABC·CNN­TV 등은 일제히 『후세인이 시한을 넘겼다』『이제 전쟁의 종이 울렸다』고 보도했다.
14분간 「전쟁의 종소리」를 강조하던 ABC­TV 앵커맨이 돌연 계속하던 논평을 중단하고 『이라크가 드디어 미국의 평화안을 수락했다』고 보도했다.
이 앵커맨은 보론초프 주유엔 소련대사가 이라크측의 수락의사를 유엔안보리 비공개회의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세계 굴지의 통신사들도 『이라크,미 제안 수락』을 제목으로 일제히 기사를 타전했다.
이들 통신보도는 안보리회의에 참석한 캐나다 대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었다.
23일 새벽 1시를 기사 마감시간으로 정했던 중앙일보는 이날 사태의 긴박성을 인식,제작상 최대의 부담을 무릅쓰고 마감시간을 2시20분까지 늦춰잡고 있었다.
이 신문제작 「시한」은 독자에게 아침신문을 제대로 배달할 수 있는 「최후통첩」의 시한과 같은 것이었다.
중앙일보는 따라서 『이라크 미 철군안 수락』으로 1면 머리기사를 제작했다.
그러나 부시 미 대통령은 한국시간 새벽 3시 『이라크가 시한을 어겼다』는 이유로 군사행동계속을 명령했고 3시47분 미 국방부 관리는 현지 미 사령관에게 걸프전쟁 지상군공격 여부를 결정하도록 권한이 위임됐다고 밝혔다.
후세인은 직설적이지 못했다.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려는데 급급했다. 유엔을 통한 평화안 수락에 관한 그의 이같은 전달방식이 미국시간 23일 정오를 칼날같이 적용한 부시의 단호함에 무참히 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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