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리더십이 없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문제는 '리더십'이었다. 위기를 돌파해 나갈 리더십의 부재로 한국 축구는 20년 만의 아시안게임 우승 꿈을 접어야 했다.

그라운드 안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선수는 주장에다 최고참인 이천수(25.울산)였다. 월드컵과 올림픽에 두 차례씩 출전한 베테랑 이천수는 23세 이하의 후배 선수들을 이끌고 경기를 조율하고 분위기를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이천수와 조원희(수원)를 뺀 18명에게 병역 특례가 달려 있었다.

그런데 후배를 다독여야 할 입장임에도 자신이 먼저 흥분해 경기를 그르쳤다. 12일 준결승에서 전반 24분 선제골을 넣은 이라크 선수들은 몸만 닿으면 경기장에 드러누워 시간을 지연했고, 심판은 이를 못 본 척했다. 그런데도 이천수는 불필요한 파울을 하거나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해 손해를 자초했다. 후반 40분쯤에는 확실하게 볼을 잡은 이라크 골키퍼의 팔을 발로 찼고, 골키퍼는 기다렸다는 듯 오버 액션을 하며 그라운드에 나뒹굴어 2~3분 시간을 끌었다. 치명적인 '이적(利敵) 행위'였다.

그라운드 밖의 리더십에 대한 책임은 베어벡 감독에게 물어야 한다. 그는 이번 대회 내내 선수들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경기 상황을 냉철하고 읽고 대처하는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라크의 밀집 수비를 뚫기 위한 전략도 없었다. 단조로운 측면 돌파가 먹혀들지 않았다면 과감한 중앙 돌파로 아크 근처에서 프리킥을 유도하거나, 중앙을 거쳐 다시 측면으로 내주는 패턴 플레이를 펼쳤어야 했다. 후반 김동현을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가 먹혀들었다면 줄기차게 공중전을 펼쳤어야 한다. 하지만 어정쩡하게 볼을 돌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버렸다. 선수 교체는 항상 타이밍이 늦거나 효과적이지 못했다.

베어벡은 '한국을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대표와 올림픽팀에 아시안게임 대표팀까지 통솔하는 '무한 책임'을 맡았다. 그는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