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만 남긴 현­전 시장 설전/박종권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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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현직 서울시장간 「수서」 책임전가 공방파문은 먼저 공을 퉁긴 박세직 현 시장이 하루만에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고 고건 전 시장에게 사과함으로써 단막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고위공직자들끼리의 발뺌추태에 아연했던 시민들의 충격은 결코 한때의 놀라움으로 그칠 수 없을 것 같다.
두 시장이 보여준 행태와 의식은 많은 시민들이 그래도 미련처럼 간직하고 있는 「제도」「권위」와 「공직자」에 대한 최소한의 환상이나 기대마저 여지없이 무너뜨린 낮은 수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에서 종결까지 불과 한나절 남짓 동안에 진행된 설전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어느 한편에 대한 동조도 비난도 아니었다고 본다. 둘 모두에 대한 냉소와 분노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두 사람은 면책도 못되고 상처만 입은 꼴이다. 특히 박시장의 경우 공인으로서의 자격에 결정적 상처를 자초했다는 인상이 짙다.
2년전에도 서울시에서는 똑같은 일이 있었다.
김용래 시장 재임중 별로 재산가치 없는 민모 예비역 장성의 남산땅을 서울시가 수용하면서 오금동 금싸라기땅을 대토해 준 것이 문제가 됐다.
특혜 논란이 일자 당시 서울시를 떠나 총무처장관으로 있던 김씨는 『염보현 전 시장이 재임때 결정한 것』이라며 『나는 추인만 했을 뿐』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어쩌면 그렇게 지금과 똑같은가.
김씨도 당시 물의가 확대될 조짐이자 곧 『모든게 내 책임』이라고 밝혀 일단락됐다.
고쳐지지 않고 되풀이되는 공직자들의 책임면하기 행태를 보면서 우리는 오늘 우리사회 위기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공인의 한마디는 천근의 무게를 갖는다. 책임감과 능력은 공직자의 기본자질이다.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공직자들은 이번 기회에 정리되어야 하리라 본다. 더욱이 고위정책결정자의 공언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힐 수는 없다.
서울시 간부들은 『시결정에 시장이 책임이 없다면 결국 우리 책임』이라며 자조하고 있다.
작금의 수서특혜 의혹은,그리고 깊어가는 불신의 골은 책임감 있는 한마디 『내 탓이오』가 없어서다. 진정으로 책임을 느끼고 책임을 지는 일꾼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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