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린 천수이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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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측근 비리 등 혐의로 사퇴 압력을 받아온 대만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기사회생했다. 9일 실시된 대만 광역자치단체 선거에서 자신이 소속된 집권 민진당이 예상을 깨고 선전했기 때문이다.

민진당의 천쥐(陳菊.56.여) 후보는 대만 제2의 도시인 가오슝(高雄) 시장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당의 황쥔잉(黃俊英) 후보를 1114표의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득표율은 천 후보가 49.41%, 황 후보가 49.27%였다.

그러나 대만 제1의 도시인 타이베이(臺北) 시장 선거에서는 야당인 국민당의 하오룽빈(龍斌.54) 후보가 민진당의 셰창팅(謝長廷) 후보를 17만여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하오 후보의 득표율은 64.52%로 현 마잉주(馬英九.국민당 주석) 시장의 득표율 70.61%보다는 낮았다.

타이베이 시의원 선거에서는 국민당이 30석, 민진당이 20석을 각각 확보했다. 그러나 집권 민진당은 이전보다 의석을 5개 늘렸다. 가오슝 시의회 의석은 국민당이 21석, 민진당이 16석을 각각 얻었으며 집권 민진당의 의석은 이전보다 1석 늘었다.

타이베이 시장 후보로 나섰던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 주석은 4.1% 득표에 그치자 이날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동안 양안(중국과 대만) 직접대화와 교류를 위해 수차례 중국을 방문했던 쑹 주석의 은퇴로 향후 양안 관계가 경색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번 선거는 외견상 야당인 국민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대만 정치전문가와 중화권 언론은 일제히 '천 총통의 승리'라고 분석했다. 천 총통은 측근 비리 등으로 5월 이후 국민당의 거센 사퇴 압력을 받아온 데다 지난달에는 부인인 우수전(吳淑珍) 여사까지 공금 유용 혐의로 기소돼 애초 이번 선거는 야권의 압도적인 승리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이와 관련, "집권 민진당이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거점인 가오슝에서 승리해 천 총통의 사퇴 압력을 줄이고, 지속적인 대만독립 정책을 펼쳐나갈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 차기 야당 총통후보로 유력시되던 국민당 마 주석은 예상보다 저조한 득표율로 당 내외의 사퇴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했다.

대만 정치평론가 난팡숴(南方朔)도 "가오슝 시장 선거 승리는 천 총통과 민진당이 최근의 부패 스캔들에도 여전히 대만 독립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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