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에 묻힌 비원에는 발자국이 없다. 시인은 대리석처럼 침묵하고 후인의 삶을 웅변으로 다스린다. 아! 시인의 마음을 느끼는자 시공을 초월하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울고 간 그의 영혼 산에 언덕에 피어날 지어이』(「산에 언덕에」전문).
작년 섬강버스 추락사고로 잃은 처자를 찾아 목 매어 저승으로 떠난 장재인씨의 유고시집 『그대여 여기는 지금 어디쯤인가』가 출간됐다(평밭간).
l95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장씨는 아내와 같이 공주사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이들은 서울 덕수상고와 강원도 홍천 내면고에 각각 재직, 주말부부가 됐다.
휴일이면 서울과 홍천을 번갈아 오가던 차 90년 9월 1일 장씨는 자신을 찾아 서울로 오던 아내와 외아들을 버스 추락사고로 잃었다.
그는 장마로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가 바다까지 간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보름만에야 건져낸 직후인 작년 9월15일 『처자를 찾아 이제는 하늘로 떠나겠다』는 유서와 함께 목매 자살, 그 순애보로·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본보 9월16일자 15면 보도).
장씨의 친구, 선후배들이 장씨의 순정한 삶을 추모하기위해 그의 일기 등에서 42편의 시를 추려 묶은 이 유고시집에는 이승에서 맺은 부부의 연, 부자의 연을 저승까지 고스란히 가지고가 세식구 나란히 한 봉분아래 묻히게 한 장씨의 사랑과 삶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1980년 학생회장으로서 공주사대의 거의 모든 집회와 농성을 주도하던 장씨는 구속되어 1년남짓의 영어생활과 군복무로 84년 복학, 아내와 만났다.
죽을때까지 단칸 전세방에서 살 정도로 가난한 장씨를 사랑한 아내에 대한 애처로움과 현실 참여사이의 갈등이 시편 곳곳에 드러 난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삼킨 섬강 둑에서 『어둠속에서 이 불빛을 보고 살아 헤엄쳐 나올지도 모른다』며 보름동안 모닥불을 피우고 기다리다 시신을 확인한 후 같이 저승으로 갔다.
주말부부를 만드는 이 척박한 현실, 그래도 이글이글 살려는 삶에 대한열망을 떨구고 사랑을 찾아가 버린 그 자체가 우주에 충만한 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