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기다려라 K - 리그' 말이나 말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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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셔널리그(실업축구) 우승팀 고양 국민은행의 K-리그 입성이 끝내 무산됐다. 국민은행은 8일 "내부 검토 결과 K-리그에 올라가는 것보다 내셔널리그에 남아 아마추어 축구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국민은행이 형식상 내세우는 논리는 "은행법상 은행 고유 업무 외 영리 목적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팀을 만들어 리그에 참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은행은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대한축구협회와 꾸준히 승격에 관한 실무 논의를 해 왔다. 은행법 문제는 당시에도 수없이 거론됐던 것이다. 국민은행 측과 다섯 차례 실무 협상을 진행했다는 축구협회 관계자는 "프로팀을 만들어 K-리그에 참가하는 게 가장 좋지만 은행법 때문에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찾자는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비영리 법인을 만들거나, 광주 상무의 예처럼 고양시와 협력해 시가 팀을 운영하고 국민은행이 지원금을 출연하는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틀림없이 올라갈 테니 도와 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막상 승격이 확정되자 딴소리를 한다"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홍보 담당자는 "경영진에서 오랜 시간 검토했지만 실리나 효율성 등을 따져 안 가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국 은행법은 구실이고, K-리그에 올라가 봐야 적자가 뻔하고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가 많으니 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국민은행은 시즌 내내 홈 구장인 고양종합운동장에 '기다려라 K-리그, 고양 KB(국민은행)가 간다'는 현수막을 내걸어 K-리그 입성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은행은 방출의 설움을 안고 K-리그 복귀를 향해 피땀을 흘린 구단 선수들을 기만했고, 고양 시민들을 배신한 격이 됐다. 더욱 큰 문제는 '내셔널리그 우승팀 승격-본격 승강제 실시'라는 한국 축구의 로드맵을 완전히 헝클어 버렸다는 것이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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