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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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상엔 눈먼 돈도 많다. 무역특계자금과 예능계 대학에서 오간 돈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돈이 아니고 낙엽같다. 손 닿는대로,입김 스치는대로 뿌려졌다.
우선 예능계 교수들이 받는 레슨비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문화선진국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시간당 최소 15만원에서 위로는 부르는게 값이다. 이런 레슨비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 서양의 아무리 소문난 레슨교수도 1백분에 썩 많이 받아야 3백달러,보통은 1백∼2백달러다.
우리나라 레슨교수들의 몇천만원,몇억원 수입은 잠깐일 것 같다. 하지만 누구하나 동전한닢 세금 냈다는 얘기는 아직 못들었다. 우리나라 세무서에 그런 너그러운 구석도 있다는 것이 반갑고 놀랍다.
「무역특계자금」이라는 것도 눈이 멀기는 마찬가지다. 보통사람은 미처 이름 외우기도 어려운,그 별난 돈은 수입상품에 강제로 얼마씩 얹어서 거둔 것이다. 가까이 지난 4년동안만 따져도 무역협회가 거둔 자금은 무려 1천8백몇십억원,올해도 5백40억원을 잡아놓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 돈은 무역협회의 돈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수입상품에 얹은 세금 아닌 세금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 돈을 무역협회는 떡 주무르듯 했다. 명목이야 통상외교에 얼마,무역진흥공사에 얼마,수출경쟁력 향상사업에 얼마… 라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서울 강남에 으리번쩍하게 세워 놓은 초호화판 무역센터를 위해 흥청망청 퍼넣었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자금의 43%가 여기에 쓰였다.
팔자 좋은 몇몇 국회의원들의 노라리 해외여행에 보태준 4억원쯤은 그런 기준으로 보면 코끼리 비스킷이었을 것이다. 손을 벌리기만 하면 언제든지 척척 내준 것만 봐도 짐작이 된다.
정작 우리 수출의 가장 다급한 문제인 수출경쟁력을 위해 쓴 돈은 전체의 3%에 지나지 않았다. 얼굴 뜨거운 노릇이다.
빌딩도 그렇다. 우리나라 보다 수출을 더 잘하는 대만이나 싱가포르에 우리보다 더 호화판 무역센터가 있는가.
수출상품은 불과 몇센트의 원가를 놓고도 눈에 불을 켜는데 한쪽에선 누구를 위한 허장성세인지도 모르고 낙엽처럼 돈을 뿌리고도 태연한 것이 바로 우리사회다. 부끄럽고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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