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깊이읽기] 線넘은 TV의 영화홍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TV가 영화를 간접 홍보해 주는 것은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다. 개봉을 앞둔 영화의 주인공들이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소나기 출연하는 것도 이미 정형화됐다. 토크쇼류의 프로그램은 물론,'해피투게더''야심만만' 등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주요 게스트는 영화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게스트가 아니라 배역을 맡아 깜짝 출연자로 등장시키는 과감(?)한 시도가 이뤄졌다. 바로 인기 오락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KBS 2TV.일 저녁 8시50분)다. '개콘'은 지난달 영화 '황산벌'의 박중훈을 '생활 사투리'코너에 출연시킨 데 이어 2일에는 '영어 완전정복'의 여주인공 이나영을 '봉숭아학당'에 출연시켰다.

담당 김영식 PD는 "영화 제목을 말하지도 않았고, 노골적으로 영화를 홍보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으나 이런 변명은 다소 군색하다. 이나영은 콩글리시 억양으로 "하우 두 유 두""아이 러브 유"등 대사 대부분을 영어로 하는 등 영화 주인공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렸으니 사실상 홍보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TV에 영화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노출 빈도가 적은 스타들이 그나마 가끔씩 얼굴이라도 비추는 것은 시청자들로선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선 '스캔들''황산벌'등의 영화는 세차례 이상씩 반복해 보여주었다. 개봉 시기에 맞춰 주인공들이 온갖 프로그램에 겹치기로 출연하는 것도 결국엔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제한하는 행위다. "오늘 하루 영화 배우 ○○○를 일곱번이나 봤다"는 짜증섞인 반응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프로그램 제작진과 영화사 측에서 보면 시청률과 홍보 효과를 주고 받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