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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의 무덤'으로 전락하는 도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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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됐어 됐어 이젠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족해 족해 …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수용소로 변해 버린 학교를 풍자하고 있는 노랫말이다. 철 지난 노래 가사를 새삼 되뇌는 것은 그것이 그리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혁명' 시대에 대비하여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떨쳐버리겠다며 말 많은 교육개혁을 추진해온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입으로는 지식기반사회를 외치면서도 입시 위주의 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중심에 '무료 책 대여점' 역할조차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학교 도서관의 초라한 도서 구입비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전북지역 초.중.고등학교의 도서 구입비는 교육부가 권장하고 있는 '표준교육비의 3%'를 크게 밑돌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신규 도서 구입에 지극히 인색하며 소장 가치가 사라진 책들로 장서 수만 채우려 하고 있어 학생들의 도서관 기피 현상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오죽하면 어느 영화에서처럼 '귀신 나오는 곳'으로 형용했겠는가.

심각함은 이런 사정이 대학이나 공공도서관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도서관과 장서 수, 그리고 이를 위한 예산만 살펴보아도 열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 수는 450여 개. 인구 12만 명에 하나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1인당 장서 수도 7권이 넘는 선진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3세계 나라들보다 열악해 0.5권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도서 구입 예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전체 도서 구입비가 미국 한 대학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획예산처에 넘겨진 정부 예산안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공공도서관 자료 구입비는 언제나 삭감 대상 영순위에 올라 있다.

초라한 도서 구입 예산은 곧바로 출판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일반 수요가 많지 않은 전문서적 출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의 위기'도 기실 이처럼 열악한 출판.도서관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에는 수천 개에 달하는 공공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에서 이런 서적들을 구입해 준다. 이것이 책 읽기 문화를 진작하고 전문 학술연구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 책의 고유한 가치는 다시 부각되고 있다. 독서 없이는 새로운 문화의 창조도 교육개혁도 헛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지형에 걸맞은 출판문화의 활성화, 이를 위한 도서관 장서 체계 및 운영의 혁신을 통해서만 지식정보사회를 제대로 대비할 수 있다. 그래야만 단순 공부방으로, 심하게는 '책의 무덤' 혹은 '지식정보의 무덤'으로 전락한 도서관을 문화와 정보 및 지식의 메카로 회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종민 전북대 교수·영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