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특약 체스먼특파원/바그다드서 1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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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피 서두르는 바그다드시민/군 트럭 질주… 하루 세번 민방공 훈련
페르시아만 외교노력이 소진돼 유엔 철군시한 이후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일간신문 데일리 텔리그라프의 서울주재 특파원 브루스 체스먼기자는 중앙일보와 특별송고협약으로 바그다드에 도착,14일 보내온 제1신에서 현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그는 전쟁이 터지더라도 바그다드에 잔류,송고할 계획이라고 알려왔다.<편집자주>
철수시한인 15일을 하루앞둔 이날 바그다드 시민들은 서둘러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으며 군트럭등이 시내를 질주하고 있어 전쟁발발 전야의 팽팽한 긴장감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바그다드시내에 있는 한 1급호텔의 지하실에서 실시된 민방위훈련에 참가한 한 호텔 웨이터는 임박한 전쟁의 위협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듯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국가민방위본부에서 나온 뚱뚱한 교육관이 무서운 속도로 그 웨이터에게 달려가 옆에 앉은 동료가 미처 깨울 사이도 없이 들고있던 책으로 호되게 팔목을 때렸다.
웨이터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는 곧 심한 욕설속에 파묻혀 버렸다.
『미국 악마가 퍼뜨린 가스에 질식해 죽고 싶으냐』고 그 뚱보교관은 일갈했다.
물론 변명이나 반항은 없었다. 아니 있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반항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체벌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무시무시한 훈련은 15일이 점차 다가옴에 따라 더욱 강도높게 실시되고 있다.
바그다드내 호텔에도 정부관리가 파견돼 하루에 세번씩 민방위교육을 실시한다.
이란­이라크전쟁에도 참전했던 교육관 자파르 예비역병장은 매우 심각한 모습이다.
미국이 생물학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한 어조로 『그렇다』고 답변했다. 『미국 악마들은 우리 모두를 질식시킬 백색가루눈(설)을 하늘에서 쏟아부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가 다량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라크 정부가 공공연히 화학무기를 사용할 의사를 비추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이 오히려 미국과 다국적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자파르 예비역병장은 강의내용중 특히 피비린내나는 대목에 이르자 눈빛이 매섭게 빛나며 가스공격의 피해를 조목조목 강조해 나갔다.
『가스탄이 떨어지면 땅 전체가 백색섬광으로 뒤덮인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모두가 실명하고 만다.』
『가스구름이 밀려들기 전에 신속히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수초내에 사망한다.』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앞으로 수일내에 평화적 해결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바그다드를 떠나 시골로 갈 계획을 하고 있다.
『나는 어머니가 계신 북쪽으로 가겠다. 우리는 모두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바그다드에 머무르고 있는 로이터통신 이라크인 지국장의 딸은 말했다.
『우리는 이미 백만명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8년간 싸웠었다. 우리는 또다시 전쟁을 하고 싶지않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미국 사람들은 바그다드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아지프 마루피라는 학생은 말했다.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이 아직도 미국의 공격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그들이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하기를 기대한다거나 원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 상인은 또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성전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세계의 회교도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며,또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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