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부족… 팔 물건이 없다(경제 먹구름 이것이 문제다: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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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호황기때 투자외면 자업자득/개발비 절반 로열티로/선진국수출 감소 추세/인력도 26만명 모자라 빈사상태
기술개발에 관한한 현재 우리의 상황은 비상사태나 다름없다.
개발자금·연구기술인력 등 기술개발의 기본요소가 제대로 갖춰진 구석을 찾기 어렵다.
여기에 예전같으면 기술을 돈을 주고 사다가라도 상품을 만들어냈을텐데 기술장벽은 높아지고 수출현장에선 『팔려해도 내놓을 물건이 없다』는 소리가 들려온지 오래다.
그나마 돈과 사람이 있다해도 기술개발은 단기적으로 성과가 가시화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국내기업들이 지난해처럼 수출에서 기술부족을 뼈아프게 느껴본 적도 드물다.
지난해 수출증가율은 4.2%에 그쳐 무역수지(통관기준)는 47억3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5년째에 흑자기조가 무너졌다. 특히 주요 수출시장인 선진국에 대한 수출이 부진,미국은 6.1%,일본은 7.3%가 각각 감소했다.
물론 이같은 대 선진국 수출부진은 세계경기 감퇴,보호무역주의 강화가 크게 작용한 것이긴 하나 그만큼 우리 상품이 선진국시장을 더이상 파고들기엔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술부족이 이같이 문제가 된데는 자업자득의 측면이 강하다. 지난 60년대 경제개발 이후 「기술입국」을 외쳐왔으나,정작 알맹이는 없었다. 가깝게는 지난 86년 이후 호황때만 해도 정부나 기업 모두 실어내기에만 급급했지 기술개발을 소홀히 해왔다. 그결과 국제경제 환경이 급변,3저호황이 거품처럼 걷히면서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국내산업이 겪고 있는 당면문제는 기술보호장벽의 강화,인력부족,기술정보 서비스체제의 미흡 등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기술인력 부족은 심각해 선진국과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상공부의 조사에 따르면 연구인력수는 한국이 5만7천명(89년)인데 비해 미국은 81만명,일본은 54만명이며 경쟁국인 대만도 2만4천명으로 인구 1만명당 연구인력수는 13.9명으로 우리(12.5명)를 앞서고 있다.
그러나 기술인력 부족은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더 크다.
산업연구원의 추계에 따르면 제조업에 향후 5년간 필요한 전문대졸업 이상 기술인력은 약 38만7천6백명으로 실제 공급가능 인원은 12만6천명에 불과해 26만명이 부족하다.
이와 함께 기술이전도 갈수록 장벽이 두꺼워져 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95년까지 2백개 핵심기술과 소재의 기술이전을 사실상 기피하고 있으며,이미 로봇·반도체 설비 등은 상당부분 선진국들이 특허로 기술을 독점,자체개발을 하려야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또 들여온 기존 기술마저 기술료가 해마다 증가,기업경영에 압박요인이 되고 있다. 전자공업진흥회에 따르면 전자업계의 대외기술 지불액은 89년 2천6백8억원으로 전체 연구개발투자비의 절반가까이(46%)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도 물건을 만들어 수출을 할 수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생산현장에서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국내기업들의 경우 들여온 기술을 습득은 잘하나 응용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는 좀체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응용을 하려면 원리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 기술이란 기초설계부터 차근차근 쌓아온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이후 기술개발이 경쟁력회복의 선결과제로 등장하면서 「기술마인드」도 사회전반에 상당히 확산된 것은 사실이다.
기업들도 다른 부문은 몰라도 기술우선 경영체제를 다지고 있고 정부도 기술개발투자를 확대,올해 연구개발투자비는 4조9천9백억원으로 GNP의 2.6%(90년 2.1%)로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절대액면에선 선진국과 비교도 되지 않고 우리의 경우 연구개발투자비 사용내용도 41.5%(일본 17.9%)를 연구소건물 신축이나 연구용 기자재도입에 쓰는 실정이다. 이제야 눈을 떠서 기술개발을 시작하는 단계인 셈이다. 생산은 곧 수출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선진국들처럼 기술력이야말로 경제력의 실체임을 증명해 보이려면 얼마나 시일을 기다려야 할지 모를 일이다.<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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