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빼 산 트럭 불타버려 공권력은 무얼 했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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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개인적인 피해도 피해지만 국가 물류 기능이 마비될 지경에 놓일 때까지 공권력은 무얼 했는지 한심합니다."

2일 새벽 경북 김천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로 11.5t 화물트럭을 잃은 김모(38.경기도 광명시)씨는 뼈대만 앙상한 차를 정비업소에 맡기고 돌아서 눈물을 흘렸다. 졸지에'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비회원인 김씨는 "차량 피해가 잇따르자 뒤늦게 엄단 방침을 밝히는 등 법석을 떠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원망스러울 뿐"이라며 "지금 같아서는 청와대나 경찰청에 화물차량을 몰고가 들이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특히 "화물연대 회원들도 우리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차에 불까지 질러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가 전세금을 빼 7500만원짜리 중고 화물차량을 구입한 것은 8월 말. 4500만원을 일시불로 지급하고 나머지 3000만원과 이자는 매달 108만원씩 3년 동안 내기로 하고 인수했다. 전세금으로 화물차량을 마련했기 때문에 김씨는 부인.생후 9개월 된 아기와 함께 어머니 집에 들어가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차량 구입 후 경기도 부천의 조그마한 택배회사의 화물을 운송하는 일거리를 맡았다. 지난 3개월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울산과 경남 지역을 오가며 화물을 실어날랐다. 3년 내로 아파트 전세금을 마련하겠다는 부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김씨는 2일 울산에서 부천으로 오던 중 경부고속도로 김천IC 부근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잠깐 눈을 붙인 사이 차량에 불이 나 차체와 함께 화물이 모두 타버리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했다.

배운 게 트럭운전이라 다른 일을 찾기 어렵다는 김씨는 "현재 대다수 피해 화물차량 기사들은 생계 유지가 막막한 실정으로, 정부에서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며 "화물연대 회원들도 제발 동료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을 하지 말아 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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