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택시 강도/인질로 돈 인출/연쇄방화 살인/모방범죄가 날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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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훔친 차적 통해 주인협박/나체사진 수법도/범죄속도 빨라 수사혼선/“TV등 통해 범행수법 익혀”
모방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모방범죄는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 신종범죄일수록 쉽게 번지는데다 최근엔 번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경찰수사에 큰 혼선을 빚고 있다.
서울 신정 경찰서는 지난해 12월20일 수표·승용차를 훔친뒤 이를 되돌려주는 조건으로 주인에게 1천5백여만원을 요구한 한훈씨(21)를 절도 및 공갈혐의로 구속했다.
한씨는 서울 목동 S사우나 앞길에서 훔친 승용차의 차적조회를 통해 주인 김모씨(48·사업)의 집주소를 알아내 협박한 것으로 이런 범행수법은 지난해 11월27일 승용차 90대를 훔쳐 이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1억여원을 뜯어내 서울 강남경찰서에 구속된 박형천씨(27)의 차량절도·금품협박사건을 모방한 것.
한씨는 경찰에서 『박씨의 범행이 경찰에 쉽게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는데 착안해 범행수법을 그대로 본떴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최근 서울 강남 일대에서 16차례나 연쇄적으로 일어난 중형택시 강도사건도 2개이상의 강도단이 서로의 범죄를 모방하며 일으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울시경이 지난해 12월24일 잡은 김성삼씨(36) 등 4인조 택시강도단은 12건의 범죄사실을 자백했으나 12월들어 발생한 동일수법 합승객 가장 택시강도 2건등 4건은 이들의 수법을 모방한 다른 조직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14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운전사와 짜고 합승객을 털려다 붙잡힌 우재식씨(23) 등 3명도 『최근 택시강도사건이 빈번히 일어나는데도 붙잡히지 않아 순간적으로 범행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가정집에 침입,가족을 인질로 잡고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수법 ▲부녀자를 폭행,신고를 못하게 하거나 나체사진을 찍어 금품을 요구하는 수법 ▲주민등록을 열람,가족사항을 확인한뒤 신고할 경우 보복위협을 하는 수법등은 이미 모방범죄를 통해 일반화돼버린 수법으로 분류하고 있다.
경찰은 또 지난해초 일어난 연쇄방화사건과 화성부녀자 연쇄피살사건도 모방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모방범죄 급증으로 수사를 맡은 경찰은 수사범위를 좁히지 못해 애를 먹기 일쑤고 잡힌 범인들도 경찰이 명백히 물증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이 저지른 모방범죄』로 우겨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 강남 경찰서 김승주 형사과장은 『예전에는 교도소에서 범행수법이 전파됐으나 요즘엔 TV등 보도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범행수법을 익혀 모방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며 『최근에는 경찰수사 방향도 범인조기검거에 따른 모방범죄 예방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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