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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선에 '韓 핵무장' 고민?…한반도 맞춤형 CNI가 답"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한ㆍ미는 지난해 4월 북한 핵위협 고도화에 맞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보다 구체화하고자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겨우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핵무장 여론이 재점화하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재선할 경우, 한국이 핵무장을 할만한 여건이 더욱 성숙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4월 한국과 미국 양국 정상이 ‘워싱턴 선언’을 통해 향후 70년의 비전을 제시했던 공동기자회견. 대통령실

지난해 4월 한국과 미국 양국 정상이 ‘워싱턴 선언’을 통해 향후 70년의 비전을 제시했던 공동기자회견. 대통령실

그래서 누군가 워싱턴 선언은 이제 종잇장에 불과해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필자는 오히려 워싱턴 선언을 주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당시 워싱턴 선언에서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대비로서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한ㆍ미가 협력하기로 했고, 전문가들은 이를 재래식-핵 통합(Conventional and Nuclear Integration, CNI)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선언에 따라 설치된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on Group, NCG)의 두 번째 공식 회의 자료에서는 ‘CNI’라는 용어가 직접 사용됐다.

CNI는 새로운 개념도 아니고, 한ㆍ미 간에만 사용하는 용어는 더더욱 아니다. CNI라는 표현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지만,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는 소련이 핵을 보유하게 된 냉전 초기부터 적이 핵을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 그리고 억제가 실패할 경우, 이미 핵이 사용된 환경에서 어떻게 싸우고 이길 것인가를 고민하며 동맹간의CNI를 발전시켜 왔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시간주 프리랜드에서 유세 중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 AP=연합

지난 1일(현지시간) 미시간주 프리랜드에서 유세 중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 AP=연합

그간 CNI는 이를 운용하는 각 군, 국가, 그리고 국가들 간의 관계, 당시의 맥락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들을 포함하게 됐다. 그에 따라 오늘날의 CNI는 전장에서 재래식-핵 전력을 결합해 적국이 야기하는 여러 가지 도전에 대한 대응을 포괄하는 개념이 됐다. 근본적으로는 작전 개념이지만, 다음과 같이 전략적 의미를 지닌 여러 분야를 포함한다. ▶핵 작전에 대한 재래식 지원 ▶화학, 생물학, 방사능 및 핵 위협에 대한 방어 ▶방사능으로 오염된 환경에서의 혹은 그 환경을 극복하는 작전, 그리고 ▶재래식과 핵 능력을 보유한 적과의 전투를 위한 기타 전술적 및 작전적 고려사항 등이다.

따라서 CNI가 포괄하는 다양한 개념들은 북한과의 제한된 핵전쟁을 준비할 때 매우 유용하다. 북한이 한국에 대해 전술핵을 사용한다면 아마도 지상 기반 운반체계를 사용할 것이며, 지상에 있는 한국 측의 표적을 공격할 것이다. 이것으로 전쟁이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한국군은 오염된 전장 환경에서 전투를 지속해야 하고, 북한의 추가적인 핵사용을 억제하면서도, 마침내 북한을 굴복시켜야 한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구 상의 그 누구도 겪어본 적이 없는 이 일을 한국은 대비해야만 한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 절체절명의 대비이지만, 현재 미국이 추구하는 전반적인 핵태세의 주안점은 아니다. 미국은 주요 적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려 하기보다는 주로 핵과 비핵 능력을 모두 동원해 억제를 달성하고자 한다. 설령 억제가 실패해 적이 핵무기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그래서 미국 본토가 공격당해 미국 대통령도 결국 핵 버튼을 누르게 된다 할지라도, 주로 해상이나 공중에서 교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지난해 6월 서울 외곽에서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가 미군 제1지역의학연구소와 함께 화생방 훈련을 하고 있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지난해 6월 서울 외곽에서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가 미군 제1지역의학연구소와 함께 화생방 훈련을 하고 있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한ㆍ미 간의 CNI는 이처럼 미국이 현재 주로 대비하는 전장과는 다른 전장 상황에 맞춘 별도의 대비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한ㆍ미의 CNI 발전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좀 더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구상을 가지고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가장 먼저는, 개념의 포괄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식 차를 이해하고 한ㆍ미간의 CNI 개념을 공유해갈 필요가 있다. 대북 억제태세와 관련, 미국은 한국의 재래식 자산을 자국의 전략기획에 통합하고, 방사능에 오염된 환경에서의 전투를 지속하기 위한 한ㆍ미 공동의 접근법을 찾는 데에 주로 방점이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동맹의 전략기획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화하면서, 과거 유럽에서 지상에서의 제한 핵전쟁을 대비해 쌓아온 미국의 전문성을 학습해야 할 것이다.

반면 한국은 CNI 개념과 실행에 있어 미국 핵무기의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억제가 실패할 가능성을 더 엄중하게 인식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은 소련의 전략핵 및 전술핵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핵위협을 익숙한 것, 또는 감당할만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북한이 당시 소련보다 핵이나 재래식 능력 모두에서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의도적으로 혹은 예기치 않게 핵을 사용할 유인이 높으며, 이를 억제하는 데는 핵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야 한다.

북한은 지난 4월 19일 서해 상에서 전략 순항미사일 '화살-1라-3'형 초대형 전투부(탄두) 위력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4월 19일 서해 상에서 전략 순항미사일 '화살-1라-3'형 초대형 전투부(탄두) 위력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렇게 한ㆍ미가 한반도의 실정에 맞는 CNI를 발전시키다면,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한다 해도, 그래서 한국 정부가 핵무장을 본격적으로 고민한다고 해도, 하나도 낭비되는 것이 없다. 오히려 한ㆍ미간의 CNI 발전은 미국이 한국을 소홀히 하기엔 너무 아까운 동맹국으로 여기도록 할 것이며, 한국이 설령 독자 핵무장을 결정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때필요한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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