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 보냈는데 대금 안와”…442억 날린 한국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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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5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10대 교역국’ 한국의 그늘

플라스틱 합성수지 원재료를 수출하는 A 기업은 지난해 해외 수입 업체 Q사로부터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받았다. 선금은 지불하지 않는 대신, 물품을 받는 즉시 대금 외에 7억원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A사는 수출 물품이 Q사 측 공장에 도착하면 100% 결제받는다는 조건을 믿고 제품을 선적했다. 하지만 통관 완료 후에도 Q사는 물품이 어딨는지 모른다면서 대금 결제를 거부했다. 제품만 보내고 돈은 받지 못한 A사의 피해 규모만 77만3156달러(약 10억6000만원)에 달한다.

‘세계 10대 교역국’ 한국의 연간 수출입 규모가 1조 달러를 훌쩍 넘긴 가운데, 이들 기업을 등치는 해외발(發) 사기라는 ‘그늘’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5년간 접수된 무역사기 피해 규모가 3200만 달러를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결제·e메일 사기에 따른 피해가 늘면서 고금리 등으로 힘겨운 기업들의 어려움을 더 부추기고 있다.

8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2023년 코트라 해외 무역관에 접수된 무역사기 건수는 626건, 피해액은 3253만 달러(약 442억원)였다. 2019년 93건(604만 달러), 2023년 118건(585만 달러) 등으로 무역사기는 해마다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올해도 포르투갈·싱가포르·토고 등 국가를 막론한 무역사기 주의보가 코트라 홈페이지에 계속 올라온다. 다만 접수된 피해 금액은 해당 기업이 주장하는 액수인 만큼 실제 사기 금액과는 다를 수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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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별로는 결제 사기-선적 불량-e메일 사기 순으로 많았다(지난해 기준). 이전보다 서류 위조나 선적 불량 등은 감소하는 추세지만, 결제·e메일 사기엔 경고등이 켜졌다. 결제 사기 피해액은 2022년 84만 달러에서 지난해 326만6000달러로 급증했다. e메일 사기 피해액도 2021년 25만1000달러에서 지난해 89만6000달러로 뛰었다. 결제 사기는 제품 수령 후 해외 바이어가 결제를 거부하거나 연락을 회피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e메일 사기는 e메일 해킹 등으로 결제 계좌 변경을 유도해 대금을 가로채는 식이다.

B 기업은 지난해 4월 기존에 거래하던 기업 두 곳을 사칭한 해커로부터 송금 요청 e메일을 받았다. 그리곤 해커가 지시한 미국 내 은행 2곳으로 1만2650달러를 두 번에 걸쳐 보냈다. 거래처 관계자 e메일 주소와 비슷한 계정을 생성한 해커에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아차렸다.

김경철 무역보험공사 아시아보상팀장은 “가짜 계좌 송금을 유도하는 e메일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한번 정한 결제 계좌를 바꾸지 않는 게 효과적”이라며 “명의도용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선 첫 거래 시 물품 인도지가 엉뚱한 제3국은 아닌지, 상대 업체 주소와 업종이 확실한지를 꼼꼼히 챙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종배 의원은 “경기 둔화와 고금리로 힘겨운 중소기업이 무역사기까지 당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들을 위한 무역사기 예방 활동이나 무역보험 가입 지원 등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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