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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엔지니어링 시장, 제 살 깎아 먹기...해외로 눈길 돌려야"

중앙일보

입력

정수동 도화 사장(왼쪽)이 지난달 29일 루마니아 교통인프라부를 방문해 이오누트 차관과 면담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쿠레슈티=강갑생 기자

정수동 도화 사장(왼쪽)이 지난달 29일 루마니아 교통인프라부를 방문해 이오누트 차관과 면담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쿠레슈티=강갑생 기자

 인프라 설계와 감리, 사업관리 등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엔지니어링업계에서 해외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도화엔지니어링(이하 도화)'이다.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인도·파키스탄 등 전 세계 77개국에서 800건이 넘는 각종 프로젝트를 따내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연간 수주액이 1조원에 육박하고 3000명이 넘는 임직원을 둔 국내 1위 엔지니어링업체인 도화는 왜 편안한(?) 국내 시장을 두고, 낯설고 리스크 큰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는 걸까. 페루 친체로신공항 사업총괄관리(PMO)와 폴란드 고속철도 PR7 설계용역 등 굵직한 교통프로젝트 수주를 진두지휘한 도화의 정수동(63) 교통부문 사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정 사장은 최근 국내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현지 정부기관과 발주처, 업계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 겸 인프라사업 협력 포럼을 단독으로 개최해 호평을 받았다. 또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진출을 본격화하기 위해 현지업체를 인수해 '도화폴스카'란 법인도 세웠다.

 - 도화가 동종업계에선 두드러지게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엔지니어링은 기본적으로 수주산업이다. 도화는 2030년 수주 목표액으로 3조원을 잡았다. 그런데 국내에선 갈수록 경쟁이 심화하는 데다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점수도 업체 간에 별 차이 없이 평준화된 탓에 수주가 쉽지 않다. 게다가 통상적으로 한 국가의 국민소득이 증가할수록 인프라에 대한 신규 투자는 줄어들고, 기존에 건설·운영 중인 설비의 유지보수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만큼 신규로 수주할 물량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단순히 엔지니어링 분야만 수주해서는 5000억원을 넘기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로 눈길을 돌려 수주 목표를 달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이는 엔지니어링산업의 존폐와 직접 관련된 사안이기도 하다.”
폴란드 고속철도 노선 투자계획도. 자료 도화엔지니어링

폴란드 고속철도 노선 투자계획도. 자료 도화엔지니어링

 - 눈여겨 보고 벤치마킹할만한 해외 기업 사례가 있다면.    
 “아랍에미리트(UAE)의 다르한다스라는 엔지니어링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의 건설엔지니어링 전문지 ENR이 발표한 국제 엔지니어링사 랭킹이 10위다. 참고로 도화는 67위다. 이 회사는 90% 이상을 해외에서 수주하면서 늘 ENR 랭킹 10위 이내를 유지하고 있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발주되는 인프라 물량이 한정적인 탓에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르한다스처럼 실적과 기술자의 실력만 있다면 무한경쟁과 수주가 가능한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
 - 엔지니어링 분야의 해외 진출은 건설 분야와 어떤 차이가 있나. 
 “국내 엔지니어링업계의 해외 진출은 건설 분야와 비교하면 매우 늦었다. 건설 분야는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1·2차 중동 붐에 힘입어 외화를 버는 산업역군으로서 효자 노릇을 했지만, 엔지니어링 분야는 2000년대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계기준의 차이, 언어 등 환경적응 실패, 저가 수주로 인한 손실 탓에 대부분 회사가 해외사업을 지속하지 못했다. 정부도 엔지니어링 분야의 수주금액이 상대적으로 미미하기 때문인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은 게 사실이다.”
 - 국내와 해외 엔지니어링 분야에도 차이가 많은가.     
 “건설 분야와는 다르게 근본적으로 국내의 엔지니어링 분야 발주방법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매우 상이하다. 우리 발주방식에만 익숙하고 습관화된 국내 엔지니어링사들은 해외에서 발주되는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설계와 시공을 통합해서 수주하는 방식), PMC(사업관리 및 자문) 등을 수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적과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국내외 건설사들과 함께 사업을 하기도 어렵다. 이는 향후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페루 리마의 메트로 모습. 자료 도화엔지니어링

페루 리마의 메트로 모습. 자료 도화엔지니어링

 -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해외진출 성과는.
 “무엇보다 2015년에 페루의 리마 메트로 2호선 시공감리(약 1230억원)를 수주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초반에는 언어문제, 문화적 차이, 상이한 발주처 대응법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를 잘 극복한 덕에 이제는 친체로 신공항 PMO 사업 등 철도와 도로·공항·수자원·항만 등 100여개 사업을 현지에서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폴란드 고속철도 PR7의 설계용역을 따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 사업은 우리 정부가 적극 지원해준 덕에 수주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수주를 통해 동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여러 건의 철도 고속화 사업을 수주할 기회도 잡았다. 이젠 폴란드가 발주하는 철도·도로·에너지·수자원 등 여러 분야에서 함께 입찰에 참여하자는 다른 나라 회사들의 제의가 들어올 정도다.”
 - 폴란드 외에도 루마니아, 체코 등 동유럽 시장에 관심이 많다. 
 “엔지니어링산업 관점에서 동유럽 시장은 EU(유럽연합) 기금이 엄청나게 투입된, 인프라 분야의 발주가 많은 블루오션이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고 입찰방법이 상이하지만, 일정 조건만 충족하면 제한된 회사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주가 용이하다. 게다가 이들 국가는 수주를 위한 영업비용이 따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설계해서 최상의 성과품만 제출하면 된다. 도화는 이들 국가 중 폴란드에 있는 엔지니어링 회사를 인수해 동유럽 시장으로 뻗어 나갈 발판도 마련했다.”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도화의 현지법인 '도화폴스카'. 크라쿠프= 강갑생 기자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도화의 현지법인 '도화폴스카'. 크라쿠프= 강갑생 기자

 - 해외 진출을 더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최근 들어 정부에서도 엔지니어링 분야의 해외 수주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여건이 한결 나아졌다. 현지 대사관과 코트라 무역관 등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다만 해외 입찰을 하다 보면 수출금융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 시중은행에서 발행한 각종 본드를 인정 안 하거나, 촉박한 시간으로 인해 낭패를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이 역할을 해주면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중남미 등 일부 국가에서 불합리하게 특정언어 사용만을 고집하는 사례가 있는데 정부에서 외교적으로 이런 문제를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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