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충격 삭이며 동양화에 몰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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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두환 전대통령의 하산 이야기가 파다하게 나도는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쌍룡아파트2동406호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65)을 찾아가 보았다.
노 대통령의 전씨 하산에 관한 언급이 있기 3일 전에 약속된 일정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 문제는 크게 예상치 않은 터였다.
그러나 정씨와 만나기로 약속한 하루 전에 전씨 하산문제가 새롭게 제기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문제가 주요 화젯거리로 등장하게 됐다.
전씨의 연희동 사저 귀가문체에 대해 정 전 총장은『국민을 우습게 보고하는 짓들』이라며 분개했고 전씨가 그 동안 참회하고 새사람이 됐다는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하수인들을 시켜 자기 PR나 하는 사람이 무슨 참회를 했겠느냐』며 격렬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또 70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직후 군 내부에서 강력히 제기됐던 정치군인 숙청건의를 자신이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12·12하극상이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그 같은 판단과 행위를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12·12이후 10여년 동안 갖은 수모와 충격에도 불구하고 나이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그는 전씨 얘기가 나올 때마다 흥분을 삭이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5월에는 12·12당시 내란방조죄로 자신에게 10년형을 선고했던 군사재판 판결에 대해 「내 부하들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며 재심청구를 신청하려다 그만두었다.
또 군 적이 박탈되고 이등병으로 강등된 지 9년 만인 88년 11월에는 김계원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함께 예비역 육군대장으로 계급이 회복되기도 했다.
그러나 예비역 육군대장에 지급돼야할 연금은 법률문제가 완전 해결되지 않아 아직까지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그렇다고 생활비 걱정할 만큼 궁색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부인 신유경 여사(63)와 단둘이 53평형 아파트에서 책도 보고 동양화도 그리며 소일하고 지낸다. 82년부터 시작한 동양화 솜씨는 작품 전에 출품할 만큼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 묘한 세상이오. 자식들에게 사회정의가 뭐라고 가르쳐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이니 말이오.』
그는「묘」자를 유난히 길게 소리내면서 작품의 세태가 실로 개탄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불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한 개인의 힘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통감했습니다.』
자신의 근황을 설명하면서 요즘 읽고있다는『풍천견향-조선후기군사실학사상』(전사편찬위원회간) 을 꺼내 보이는 그에게 전씨 하산문제를 계속해 물어봤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불과 얼마 전에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했잖소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는 사람이나 이제 그만 내려와야 한다는 사람이나 다 웃기는 사람들이오. 결국 국민을 우습게 보고하는 짓들 아닙니까.』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잠시 숨을 멈춘 뒤 그는 다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전두환이가 돈 많은 거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심지어는 그런 자한테 성금을 거둬주자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 돈 거둬 줄 사람이 그렇게도 없어서 그런 자한테 돈 갖다 줍니까.』
이야기가 점점 달아올랐다.『우리나라에는 참 못된 폐습이 있어요.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도 가혹하지만 권력과 재물 앞에서는 그렇게 비굴할 수가 없어요.』
그는 총장시절 자신의 경험담을 실례로 들었다. 평소 소위 이상 장교들에게 말을 놓지 않는 자신에게는 별로 예의를 갖추지 않던 사람들이 반말을 써가며 호령하는 다른 장군들에게는 깍듯이 대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한번 휘두르면 그저 누구든지 따라오니까 국민을 우습게 보는 풍토가 생겨났고 그때부터 사회정의는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평소 자신이 존경했던 윤보선 전 대통령이나 박순천 전 신민당당수 같은 이들이 5공 하에서 권력에 아부하는 추태를 보고 크게 실망한 나머지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에 대해 심한 불신감을 갖게됐다고 털어놓았다.
-그 동안 신문보도를 보면 전씨가 백담사 2년 동안 많은 수양과 참회를 해서 불가에 귀의했다고 하니까 이제 내려 올 때도 됐다고 보는데….
『(다시 언성을 높이며) 그가 무슨 새사람이 되겠소. 불교 근처에도 안간 사람이 무슨 참회를 한단 말이오. 참회를 하려면 부처님 말씀처럼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근본적으로 인간이 안된 사람이 그래 불경 몇 구절 왼다고 사람될 것 같으면 세상에 악인이 어디 있겠소. 하수인들 시켜서 자기PR하는 게 그게 참회란 말이오.』
-총장재임 때 전두환 소장의 평소 행태를 어떻게 봤습니까.
『본래 청와대주변만 돌아다니는 권력형이라서 나하고는 별 인연이 없었고 또 그 사람을 군인으로서 훌륭한 장군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육군소장 때 이미 엄청난 고액 과외를 시킨 사람이오. 그런 엉뚱한 자가 일 저지르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소. 모든 일은 결국 내가 부하들을 과신한 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10·26직후 군 내부에서 중앙정보부나 청와대 경호실 등에 장기 근무하는 이른바「정치군인」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숙청론이 강하게 일고 있을 때도 총장인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권력주변에서 근무하게 된 게 반드시 본인의 의사라고만 볼 수는 없으며 설사 그럴만한 명분이 있더라도 숙청작업은 새 정부가 해야될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 발전에 가장 장애가 되는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군이 너무 정치에 예속돼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하고 실례로『지휘관 교체도 결코 정치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6공 이후 노골적인 감시·미행·도청 같은 행위는 사라졌지만 현역은 물론 군 후배들조차 집을 찾아오는 경우가 전혀 없고 어쩌다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아예 피해버리거나 마지못해 목례만 하고는 바삐 사라지기가 일쑤라며 바로 그 점에 가장 비애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슬하에 홍열(41)·태열(34)·이열(31)·희정(36)등 3남1여를 두고 있는데 현역 육군소령으로 있는 3남 이열씨(육사38기·육군대학)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다.
2시간 가량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전직 계엄사령관의 눈가에 어려있던 이슬방울을 뒤로하고 아파트를 나서자 밖에서는 때마침 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글 김준범 기자 사진 장충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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