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휴먼골프 <28>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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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과하다 싶으면 사고가 납니다. 골프도 무리하면 사고가 나게 돼 있어요. 균형을 잘 잡고 거리보다는 방향을 잘 잡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2주 전 제주도 라온 골프장에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골프를 함께했다. 첫 번째 놀라움은 김 총재의 체력이다. 80세를 넘어선 나이에도 드라이버 비거리가 180~200야드 나간다. 스윙 자세는 전형적인 8자 스윙에 가까웠는데 임팩트 때 상당한 파워가 실린다. 김 총재는 이것을 '검도 타법'이라고 했다. 검도 유단자 실력을 살려 칼로 목표물을 베듯 기를 실어서 친다. 특이한 것은 세컨드 샷을 페어웨이에 티를 꽂고 드라이버로 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번을 치고 나서 아이언으로 그린에 공을 올리고 정교한 퍼팅으로 파를 잡아낸다. 파 4홀에서는 '스리 온 원 퍼팅'이 목표라고 했다.

"나이 들어서 무리하면 사고 납니다. 우리 나이에는 스리 온 원 퍼팅하면 좋은 성적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어요."

그러니까 팔순이 넘은 나이에 무리하게 파 온을 시도하거나 찍어 치는 아이언 샷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골프는 누굴 이기려고 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자연과 인생을 배우는 운동입니다. 그러니까 골프를 해 보면 그 사람의 인생관이나 성격이 드러나게 돼 있어요."

골프방송 촬영을 겸해 이뤄진 이날 라운드는 시간 제약 때문에 9홀만 진행했다. 국무총리 재직 시절 미국 로저스 국무장관과 5달러짜리 내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5000원짜리 내기를 제안했다.

"나는 내기는 잘 안 합니다. 그러나 윤 교수가 도전하니까 파3에서만 합시다."

페어웨이에 티를 꽂고 세컨드 샷을 하는 자신의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는 자기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김 총재는 파 4개에 42타를 쳤고, 나는 파 6개에 39타를 쳤다. 그리고 5000원이 걸려 있는 4번 홀(152m)은 파로 비겼고, 7번 홀(141m)은 내가 이겨서 결국 5000원을 땄다.

"총재님, 저는 50대인데 오늘 라운드에서 제가 지면 젊은 사람이 졌다고 비난받을 것이고, 제가 이기면 예의를 모른다고 할 것 같아 고민이 많았습니다."

"골프는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즐겁게 쳤다고 하세요."

새해에는 "홀인원을 하시라"는 덕담을 드렸더니 의외의 답변이 나온다.

"나 홀인원 안 할 겁니다. 홀인원 세 번 하면 꼭 죽어요. 그동안 내가 본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니까!"

선문답 같은 말 속에서 JP의 '지속 가능성'과 '2인자 철학'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의 원 포인트 레슨=욕심을 부리면 무너진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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