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제방 붕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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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9월 12일 새벽 행주대교 부근 한강제방 붕괴로 경기도 고양군 일대는 순식간에 물바다를 이루며 아수라장이 됐다.
일산읍·지도읍·송포면 등 고양군의 83개리 1만1천6백 가구 4만5천여 명의 이재민을 냈고 경기도 곡창지대였던 논 5천6백여ha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해직후 주민들은 학교나 공공시설로 대피, 난데없는 난민생활(?)의 고초를 보름이 넘도록 겪어야 했다.
당시 가옥이 전파되거나 반파된 1천여 가구 주민 5천여 명은 물이 빠진 후에도 붕괴위험 때문에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주민들은 군청에서 무상 지원한 비닐·스티로폴·철제파이프 등을 얼기설기 엮어 가건물을 지어 생활의 터를 닦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4백여 가구는 난방시설도 안된 비닐하우스에서 유난히 춥고 외로운 세모를 맞고 있다.
그나마 정부로부터 받은 피해보상액은 기본생활에도 부족한 형편이어서 새해를 맞는 기쁨보다는 서글픔이 복받쳐 오른다.
고양군 당국은 정부로부터 할당받은 2백63억원의 수재의연금으로 9월말 피해액의 50∼60%를 보상한다는 보상책을 마련, 보상을 거의 끝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전·반파 등 피해정도에 따라 가옥수리비용으로 2백83만∼8백38만원이 보조 또는 융자됐다.
농작물 50%이상 피해농가에 대해서는 4백만∼8백만원이 지급됐다.
가축피해농가에 대해서는 한우 한 마리에(1백30만원 기준) 26만원, 젖소(1백만원 기준)는 20만원, 돼지(5만원)는 1만원, 닭(4백50원)은 90원씩 보상했다.
이밖에도 무상양곡 5∼15가마, 무상보조 20만∼40만원, 양곡 무이자 대여 20가마(20kg기준) 등 20여개 항목에 걸친 보상을 기준에 따라 가구별로 지급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러한 보상액이 기본생활에도 모자라는 액수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고양군 수재민 5백여 명은 지난달 20일 국회의사당을 찾아가 피해액 전액보상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이명의씨(66·고양군 지도읍 행주외리)는『3천7백여평의 논이 물에 잠겨 작년의 절반에 불과한 쌀 40가마를 수확했으나 그나마 쌀이 식량으로 쓸 수 없는 싸라기여서 시중에 팔 수도 없는 지경』이라며『수해 당시 피해전액을 보상해 주겠다던 정부는 논 한평에 3백63원 꼴로 일괄보상, 5백만원의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수해가 천재가 아닌 인재이기 때문에 정부는 당연히 전액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너진 한강제방 바로 밑에 축조된 신곡수중보로 인해 강물의 자연스런 흐름이 가로막혀 제방이 붕괴된 것으로 주민들은 보고 있다.
신곡수중보는 88년 5월 서울시가 한강종합개발사업의 하나로 한강에 일정량의 물을 유지하기 위한 콘크리트 벽으로 높이 1∼4m, 폭 9.5m, 길이 1천7백m에 이른다.
주민들은 이와 함께 제방에 난 들쥐 구멍을 당국에서 방치, 물이 구멍을 타고 제방에 스며든 것도 둑 붕괴 원인이라며 당국의 책임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양군은『당시 쏟아진 1천2백여㎜의 폭우에는 어떠한 제방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며 주민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해 피해전액 보상을 둘러싼 대립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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