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아픔』돋보인 1인극 난산가족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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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배우로서 1인 극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그것은 이미 배우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인정받았다는 뜻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또 한사람의 훌륭한 여배우에게 찬사와 갈채를 보낼 수 있다. 바로 요즘 『봉숭아 꽃 물』(14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뜨거운 열정을 쏟고 있는 최형인이 그 주인공이다.
김민숙 원작소설을 연우무대의 이상우가 각색·연출한 『봉숭아 꽃 물』은 점점 추상화 되어가는「분단」문제를 아주 구체적이며, 지극히 사적인 맥락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민족적인 차원에서 거창하게 얘기될 때보다 한결 현실감이 있다. 이 작품은 한가정의 가족 사이자, 우리 민족의 현대사다. 여기서 홀로 출연하는 주인공 승혜는 이모든 문제를 자기 내부로 끌어 안아야 한다.
승혜는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다. 「항일 독립 투사」로까지 미화되던 아버지가 어느날 간첩으로 나타났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북에 두고온 처자식의 안전이 염려되어 전향하지 못하고 무기형을 언도 받아 복역중이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회갑을 맞아 잠시 승혜네 큰집에 돌아옴으로써 승혜의 갈등이 시작된다.
승혜의 엄마는 남편이 북쪽의 가족들만 귀하게 여기고 자신은 영원히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한사코 큰집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는 승혜의 손에 고운 모시한복과 남편이 좋아하는 콩국을 한 양동이나 들려보낸다. 그리고 엄마는 승혜가 큰집에 간사이 연분홍 한복을 차려입고 경로당에 나가 죽은 남편의 회갑 날이라며 청요리까지 낸다. 37년만에 처음 만난 아버지와 딸은 눈길이 마주치는 것조차 어색해했고 그래서 서로 변변한 얘기도 나누지 못했다. 승혜는 「정」을 느끼고 돌아오지만 끝내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 연극은 분단의 아픔을 개인의 차원에서 인간적인 불행으로 묘사함으로써 절실한 공감을 준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청승맞게 표현됐다는 점에서는 다소 불만이 있다. 승혜는 아버지를 선뜻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감상적인 어조로 과거의 상처를 돌이킨다.
무대에 나타나지 않는 엄마의 사무친 한을 대신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리라. 승혜가 좀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드라이한 분위기로 전반부를 이끌었다면 아버지를 만난 후의 그 애틋함과 눈물이 더 큰 물림을 남겨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승혜 혼자 주변의 다른 인물들을 대변해야하기 때문에 화법이 너무 여러 차원으로 흩어진 것도 제대로 몰입할 수 없게 만든 요인이었다.
그래서 연극이 다 끝나고도 극중의 승혜가 가슴속에 남기보다는 혼신을 다해 연기하며 넓은 무대를 홀로 장악했던 최형인이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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