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모래판 악동」강호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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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의 전통스포츠인 씨름에 있어 90년은 한마디로 「대권이양의 해」였다.
민속씨름이 출범하던 83년 당시 약관의 나이로 초대 천하장사에 올라 천하장사 10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우며 「씨름황제」라는 별명을 얻은 이만기의 시대가 막을 내린 반면 「괴력의 소년」강호동(19·일양약품)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강은 90년 한해동안 열린 세차례의 천하장사대회를 독식, 이만기에 이어 천하장사 3연패를 달성한 두번째 기록보유자가 되었다.
게다가 이만기보다 한살 어린 19세의 나이로 최연소 천하장사가 되었던 제18회 대회 때는 제47회 백두장사 타이틀까지 한꺼번에 거머쥐는 괴력을 과시했다.
마산상고를 졸업한 89년3월 부산 조흥금고에 입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양약품으로 팀을 옮긴 게 5월, 그리고 불과 두달만인 7월의 제44회 체급대회에서 강은 이만기를 뉜데 이어 자신을 트레이드 시킨 맞상대였던 임용제(조흥금고)마저 꼬나메어쳐 프로모래판에 신풍을 일으켰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강이 발휘하는 이 엄청난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괴성을 질러 대는가하면 허공을 향해 삿대질과 빈 주먹질을 서슴지 않았던 특이한 제스처 때문에 「반항아」 「야생마」라는 별명을 얻었던 강을 붙잡아 오늘의 모습으로 조련시켜놓은 김학룡 감독은 『백두산 정기와 산삼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곧잘 농담을 한다(일양약품팀은 지난해5월 씨름단으로서는 유일하게 중국연변과 백두산을 다녀옴).
강은 또 지금도 계절이 바뀔 때만 되면 마산의 부모님이 달여서 서울로 보내오는 성분을 알 수 없는 신비(?)의 보약을 먹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강은 말한다.『무슨 특별한 값진 보약이나 영양 식품을 먹는 등의 비법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실제로 강은 가장 싫어하는 음식으로 보신탕을 꼽는다. 이유는 『비위가 약해서』다.
그렇다면 단순히 키1m82㎝·몸무게1백20㎏에 가슴둘레 1m32㎝·장딴지둘레 49㎝라고 하는 장대한 체격 때문에 그런 힘이 솟아나는가.
그러나 강보다 더 크고 더 무거운 선수들이 즐비하다.
씨름과 맥을 같이하는 전통무예 연구가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선 힘에는 내뻗어 지르는 양의 힘과 휘감아 당기는 음의 힘 두가지가 있는데 동양인,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인은 음의 기운이 강하다는 게 전통무예연구가들이 말하는 힘의 질에 대한 설명의 시작이다.
복싱선수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듯 양성인 서양선수들은 바로 내뻗는 스트레이트가 강한 반면 우리는 휘어치는 훅이 강한 게 당연하다는 것.
위로 솟구치는 성질을 가진 양의 힘은 「어깨와 잔등」에서 나오고 음의 힘은 「허리와 단전」에서 나온다.
결국 잡아당기는 힘의 대결장인 씨름에서는 힘의 회전을 구사하는 능력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낮을수록, 또 누가 더 많은 힘의 길을 터득하고 있느냐에 따라 회전의 주도권이 결정되어진다는 설명이다.
힘의 길이란 대장장이가 「망치질에 길이나듯」(도가 트이듯)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찾아내 안정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전통무예뿐 아니라 씨름에서도 중심을 낮추며 회전을 기본으로 하는 수련을 계속하다보면 체형은 자연히 「통짜」몸이 될 수밖에 없고 이「통짜」몸의 이상형은 석굴암에 모셔진 부처의상(상)을 닮는다고 탄다.
이와 같은 주장에 따르면 민속씨름판에서 가장 훌륭한 「통짜」몸의 소유자가 바로 강호동이다. 그자신도 단순한 힘(근력)에 관한 한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팔씨름을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단순 동작에서는 일양약품 동료들 중에서도 중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심이동을 하면서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시키는 순발력과 집중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괴력의 요체가 바로 이것이다.
또 한가지가 있다. 강은 씨름판에 오르기 직전, 또는 한판 한만이 끝날 때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중얼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학룡 감독이 입버릇처럼 『남들이 알면 창피하다』고 할 정도로 심하게 중얼거린다.
그 내용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강호동, 이번만 이기면 천하장사되는거지? 맞지? 준비됐지? 그래, 이길 수 있어?』등등.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유도하면서 정신력을 증대시키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터득하고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근력에다 정신력을 추가하는 강에게 이를 흐트러지게 하는 정신적·육체적 요인이 끼어 들지 않는 한 괴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마산에서 식당업을 하다 지금은 그만둔 운동 경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버지 강태중(55)씨는 1m70㎝정도의 보통체격. 대회 때마다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는 어머니 정말순씨(51)도 1m58㎝정도의 작은 체격이다. 그저 그만한 형제들인 2남3녀중 유독 강만이 「우람한 돌연변이」로 출생, 괴력의 근원은 다분히 불가사의하다.
어쨌든 나이가 어리다는 점과 기술적으로도 개발의 여지가 많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91년도 모래판의 절반은 이미 강의 것이라는데 이의를 달기 어렵다.<김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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