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서실장의 「선서 회피」/전영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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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일 밤부터 4일 오전 1시까지 진행된 국회운영위원회(위원장 김윤환 민자당총무)의 대통령실에 대한 감사는 대통령실 대표인 노재봉 비서실장이 「증인선서」를 거부하는 바람에 한때 공전사태를 빚었다.
오후 4시부터 예정됐던 대통령실 감사는 노실장이 운영위원장실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여야 총무 및 수석부총무간의 부산한 접촉과 논쟁이 오가다 결국 오후 8시30분에 겨우 시작되었다.
의원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 노실장은 「웃분」의 부름으로 급히 청와대에 볼일을 보러 갔고 그참에 최창윤 정무수석이 발언대에 나서 대신 선서서를 읽는 것으로 어물쩍 문제를 넘기고 감사에 들어갔다.
노실장은 국감 시작 30여분 후에 운영위원장의 연락에 의해 바로 감사장으로 들어와 의원질의에 답변했다.
그는 증언대에 서서 오른손을 들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는 선서문을 읽는 것을 피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여야 의원들도 『선서를 시키려 했으나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나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차하대표로부터 선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최소한의 면은 세울 수 있었다.
대통령실의 선서문제는 이처럼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이에 대한 여야간 절차합의 형식으로 해결됐지만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우선 국회증언 감정법상에 위원장은 증인에 대해 선서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럼에도 노실장이 이를 한사코 기피하고 여당이 편들어 준 것은 대통령실의 수장은 엄격한 의미에서 대통령인데 대통령이 어떻게 선서를 하고 감사를 받느냐는 논리에서다. 대통령은 취임때 국민앞에 한번 선서한 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을 대표해 나왔다. 그렇다면 그가 굳이 선서문을 낭독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 온당하냐는 문제가 생긴다. 그가 명백히 국정감사를 받는 피감기관장임에도 직접선서를 하지 않음으로써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권위를 세웠다고 생각한다면 옳은 생각일까.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신 국정을 수행하는 것이 대통령 비서실장 뿐일까.
부총리도,각부 장관도 모두 선서를 하고 감사를 받았으며 의원들은 국민을 대신해 감사를 했다.
법 준수와 공평을 국정지침으로 삼는 대통령보좌기관이 자신에 대해서만 유독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석연치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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