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식 전쟁」 준비하는 미국|페 만전 대비 미 첩보위성 총 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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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은 페르시아만 현지에 동서 냉전의 부산물인 첩보 위성을 총동원, 마치 공상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21세기 식 전쟁을 치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행정부는 페르시아만 현지에 몇 개의 첩보 위성을 동원하고 있는지 공식으로 밝힌 바는 없다. 그러나 첩보활동을 하는 위성을 포함, 통신·기상·항법보조위성 등을 모두 합한다면 적어도 수십 개의 인공위성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열쇠 구멍」(Keyhole)이라는 암호를 가진 첩보 위성군단이다.
미소간 전략 핵무기 감축 합의에 따라 미국이 소련의 감축현황을 감시하기 위해 개발한 위성들이 페르시아만 현지에 투입된 것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첩보 위성군단의 능력은 가위 놀랄 만 하다.
수백 마일의 상공에서 자동차 번호 판을 감지할 수 있으며 바그다드 거리에서 시민이 읽고 있는 신문이 어떤 종류의 신문인지를 식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위성 군단은 야간 식별능력도 야음을 틈탄 지상 물체의 움직임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구름에 가린 것은 물론 교묘하게 위장해 놓은 각종 무기들을 식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성능 탱크와 노후탱크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 4∼7개로 구성된 이「열쇠 구멍」 위성군단은 주로 사진촬영 위성 역할을 하며 모두 허블 우주망원경 기술을 도입하고있다.
개당 가격 10억∼15억 달러에 상당하는 이 위성은 자체 힘으로 고도조작까지 가능하여 24시간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감시할 수 있다.
여기에다 고도 3만5천km 상공에서 이라크의 모든 지상 교신을 청취하는 「매그넘」「버텍스」라는 암호명의 청각 위성과 이라크의 화력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열 감지 위성도 있어 입체적인 정보수집이 가능하다.
또 보조위성으로서 사막의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 위성, 사막을 횡단하는 탱크·헬기·보병 부대 등에 위치를 알려주는 항법 위성, 첩보 위성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지상으로 연결해 주는 통신 위성 등을 포함시킨다면 이번 전쟁은 위성의 힘으로 치르게 된다고 얘기해도 될 정도다.
페르시아만 현지의 미군 지휘관들은 미국 본토로부터 종합돼 통보되는 위성통신 정보를 그때 그때 받아 이라크군의 탱크·포·미사일 배치 현황은 물론 각종 부대의 움직임까지 상세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위성 정보는 빠를 경우는 수분, 늦어도 몇 시간 내에는 현지 지휘관에게 배포된다.
따라서 미국이 노리는 이라크의 공격 목표물에 대해서는 최소한 3일에 한번은 최근 정보로 대체하며 중요한 우선 공격 목표물에 대해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 자료가 보충된다.
이 같은 첩보위성을 전략차원이 아닌 지역분규의 전술차원에 활용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은 그레나다 침공·파나마 침공 당시에도 이 위성을 활용했으나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 경우처럼 본격적으로 활용한 예는 없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에 침공하기 위해 대규모로 병력을 이동했을 때 이 첩보 위성자료 분석가들은 이라크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경고했으나 워싱턴·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당국자들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또 부시 미 대통령이 서둘러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을 파병한 것도 이라크가 쿠웨이트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침공할 준비를 하고있다는 첩보 위성의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는 얘기다. 【워싱턴=문창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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