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유럽연구소 설립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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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180㎞ 정도 떨어진 잘란트주 잘브뤼켄시 인근 잘란트대학 구내. 21일 이 대학 캠퍼스에 조성된 사이언스 파크를 들어서자 3m 가까운 '과학대장군''환경여장군' 장승이 잔디밭에 세워진 3층짜리 KIST유럽연구소가 나타났다. 부지 3000평, 건평 756평 규모다. 정문 옆 국기 게양대에는 태극기와 유럽연합기, 독일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정부의 이공계 연구소로는 처음이자 유일한 해외 연구소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KIST유럽연구소는 '독일의 어느 대학 또는 빌딩의 한구석을 빌려 간판만 걸어 놓은 곳'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있었다. 정부 기관의 해외 사무소 등이 대부분 그래 왔기 때문이다.

스타인펠트左박사와 이혁희 박사가 독자 개발한 획기적인 암치료 기술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설립 10년 만에 빛 보기 시작=KIST유럽연구소는 1996년 개소식을 했지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불과 4년 전이다. 건물이 완공된 게 2000년, 연구 장비가 설치된 게 2002년 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독일 양국의 공동 사업으로 막상 연구소는 세워졌지만 그동안 정부의 지원이나 관심이 적어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연구성과가 잇따라 나오고, 유럽연합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KIST유럽연구소의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올해 이곳을 방문한 김우식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은 "KIST유럽연구소를 이공계 연구의 유럽 거점으로 키워야 한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김창호 KIST유럽연구소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해 몇십 명에 불과하던 한국 관계자들의 방문이 올 들어서는 벌써 300명을 넘어섰다"며 "대학과 연구소들이 어떻게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지 등을 탐색하기 위해 찾아온다"고 말했다. 연세대의 경우 벌써 협약을 맺고, 대학원생을 보내겠다고 했다.

내년에는 한국과 잘란트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582평 규모의 제2연구동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다.

◆유럽연합 연구 과제 직접 수주=우리나라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유럽연합에서 발주하는 연구과제를 받을 수 없다. KIST유럽연구소는 독일에 설립된 독립 연구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현재 소화기관 종양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다용도 마이크로 캡슐 개발[2006~2010, 960만 유로(약 120억 원), 19개 기관 공동]에 참여하고 있고, 서너 개 과제가 심사를 받고 있다.

그동안 이 연구소에서는 치매나 식중독균 등을 탐지할 수 있는 바이오 센서, 환경호르몬 제거 기술을 개발하는 등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

◆테제베 고속철도 내년 연결=내년 7월이면 프랑스 테제베가 프랑스 파리-잘브뤼켄-프랑크푸르트까지 연결된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로 파리까지 4~5시간, 프랑크푸르트까지 2시간 정도 걸리던 것이 각각 2시간, 40여 분으로 단축된다.

KIST유럽연구소도 주변 국가 연구진과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KIST유럽연구소 바로 옆에는 독일의 대표적인 연구소인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인공지능연구소, 프라운호퍼연구소의 비파괴연구소를 비롯한 두 개 연구소, 헬름홀츠연구소의 신소재연구소 등 4개 연구소가 모여 있다. 연구 환경으로는 그만이다.

잘브뤼켄(독일)=박방주 과학전문기자

◆ "수주액 30%는 유럽서 받을 것" 김창호 소장 인터뷰

"유럽연합 차원에서 풀고 있는 연구비가 많습니다. 우수한 연구인력과 공동 연구를 할 연구소도 주변에 있어 더욱 조건이 좋아요."

김창호(사진) KIST유럽연구소장은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충해 유럽 유수의 연구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부임했다. 그동안 유럽에 연구소가 있으면서도 한국 연구과제를 주로 해왔던 것을 대대적으로 바꿀 계획이다. 앞으로 총 연구 수주액의 30%는 유럽에서 따겠다는 것이다. 올 연구비 수주액은 25억원. 2016년까지는 한 해 연구비 수주액 200억원 규모가 그의 목표다. "대학이나 연구소들이 KIST유럽연구소에 연구실을 빌려 들어오면 곧 우리 연구소 이름으로 유럽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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