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지붕 청기와 400년 전 제조 추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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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선시대 왕궁인 경복궁의 지붕이 청기와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왕조 출범당시 새 왕조의 권위 조성과 함께 중국의 지붕양식과 다른 독자성을 추구하려 한 당시 집권층의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관계기사 28일자 22면>
경복궁 유적 발굴조사단(단장 조유전)은 경복궁 종합 복원 계획의 일환으로 궁안 4천여 평의 지역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경복궁 지붕을 이었던 청기와 파편들을 찾아냈다고 28일 발표했는데 조사단이 지난 5월부터 총 사업비 1억8천5백 만원의 예산으로 작업을 벌이는 장소는 경회루 동편 사정 전 뒤편 지역으로 왕이 주로 거주하던 대내지역.
조선왕궁인 경복궁의 주요건물 기와가 청기와인가 혹은 흑기와 인가의 여부는 그 동안 사학자 및 고고학자들 사이의 주요 논점이기도 했다.
『조선실록』에 따르면 문종 당시 청기와로 지붕을 올렸다는 기록은 있으나 당시 대신들이 반대한 사실, 그리고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데다 비용이 엄청나 실현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도 꽤나 설득력 있게 주장돼 왔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과정에서 임란 때 전소되거나 일제에 의해 훼손됐던 강령전·경성전 등 주요 왕궁 건물 지 17곳과 함께 청색 유 약을 입혀 구운 용문막새·귀목리상·평 기와 등의 청기와 유물이 다수 발굴돼 경복궁은 본래 청기와를 사용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발굴 조사단장인 조 박사는『조선이 서울에 궁성을 지을 당시 청기와를 사용했었음이 확실하다』면서『발굴된 청기와 류의 제조연도는 최소한 4백년 전 이상은 될 것으로 보이며 기와마다 색깔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문양도 왕을 상징하는 용 문과 척사의 의미가 있는 귀면 문이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문화재 관리국은 조선총독부 청사였던 구 중앙청 건물의 이전 추진과 함께 훼손 궁궐의 복원 및 일본식으로 왜곡된 주변경관의 조경도 원상대로 복원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지난 5월부터 기초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김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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