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장-대리 급에 "박사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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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한항공부설 항공기술연구소에는 박사만 11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 임원은 이사 급인 책임연구원 3명뿐이고 절반이 넘는 6명이 과장급, 나머지 2명은 차장급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박사학위소지자는 2백명이나 되지만 이중 임원은 20%인 40명에 불과할 뿐이다.
선경도 박사 82명중 임원은 12명뿐이고 동부그룹은 6명의 박사가 모두 부장급아래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기업체 박사하면 회전의자에 앉아 두꺼운 안경을 끼고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자문·지도해주는 「고문」을 연상하게 마련이었으나 이제는 현역에서 뛰는 젊은 박사가 오히려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화약그룹은 작년 말 이후 지금까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박사 4명을 대리급으로 새로 채용했다.
외환은행의 경우 박사2명중 한 명은 차장, 또 한 명은 대리급이다.
각 기업은 앞으로 이 같은 과장 또는 대리급 박사가 기업체박사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딴 뒤 곧바로 입사했다면 나이로도 평사원에서 4∼5년 지난 뒤 주어지는 「대리」급 이하 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최고의 지성을 상징하는 박사급 고급인력도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른 인플레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있다.
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해외유학과 대학원 진학 붐 등으로 박사 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경우 연구개발 확대추세에 따라 고급인력의 채용규모를 계속 늘려가고는 있지만 이는 주로 첨단과학을 중심으로 한 자연계열전공 출신에 집중되고있다.
이에 따라 인문계출신 박사의 경우 10년 전만 해도 대학이든 연구소든 골라갈 수 있었으나 이제는 어렵게 학위를 따와도 갈곳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20대그룹의 경우 전체 박사수는 8백24명으로 3백명 수준이었던 지난 87년 말에 비해 3년 사이에 3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이중 문과출신박사는 전체의 15%에 불과할 뿐이다.
대림·두산 등 6개 그룹의 경우는 아예 인문계 박사가 없다.
문과출신 박사가 이공계보다 같거나 많은 기업은 최근 금융쪽을 강화하고 있는 동양시멘트 등 3개 그룹뿐이다.
신한은행 부설 경제연구소의 경우 연구원 수는 50여명에 이르고 있지만 박사는 한 명도 없다.
지금까지 10여명이상의 박사학위소지자가 인사 희망을 비춰왔지만 아직 뽑지 않고 있다.
학문적인 토대가 필요한 연구업무는 외부의 용역 또는 자문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소측의 생각이다.
건설주력인 대림그룹의 경우에도 박사는 4명뿐이지만 건축사·기술사자격증 소지자는 각각 22명, 1백41명씩이나 돼 기업들의 실무중시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계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각 기업이 우수인력확보에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단일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1백10명의 박사를 보유하고있는 삼성전자는 당분간 매년 50%씩 박사인력을 늘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삼성은 이를 위해 13일 미국에 「박사유치 팀」을 파견했다.
금성사도 매년 2∼3차례씩 미·일·유럽지역에서의 현지광고·순회유치반 파견작업등을 벌이고 있다.
각 기업은 채용조건으로 박사학위수당·연구보조비지급등 각종 혜택도 경쟁적으로 내걸고 있다. <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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