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무적" 외국 나가면 "무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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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탁구가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88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던 유남규(유남규·22·동아생명)가「안방 챔피언」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얻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88년 이후 유는 89 세계선수권. 90년 북경아시안게임, 90월드올스타 서키트, 제11회 월드컵 대회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혼자서는 이름 값도 못하는 부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19위에 져>
세계 선수권(서독)·에서는 현정화(현정화·21·한국화장품)와 짝을 이룬 혼합 복식에서, 북경 아시안게임 단체전과 제1회 세계 복식컵 대회에서는 김택수(김택수·20· 대우증권) 의 보조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했을 뿐이다.
세계랭킹 5위인 유는 게다가 세계 남자 단식 강호들을 격전장이라 할 올스타 서키트 (9일· 8강전)월드컵(11∼14일·이상 일본)에서는 세계6위인 중국의 천룽찬은 물론이고 19위인 일본의 사이토에게 마저 2-0으로 완패, 각각 예선 탈락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
그저 TV화면을 통해서나 지면을 통해 경기 결과만을 접하는 탁구 팬들 사이에서는『유의 선수 생명이 끝난 것이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탁구계에서는「그래도 아직은 유 만한 탁구신동(신동)이 없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단 마음먹으면 국내에 당할자가 없는 유의 실력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손목의 스냅을 이용,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각으로의 푸시라든가, 상대로부터 넘겨진 볼이 테이블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상대가 볼 수 없는 낮은 지점에서 방향을 잡아 끌어올리는 절묘한 루프 드라이브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유의 기량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해 국제 탁구연맹(ITTF) 의 오기무라 회장도『유는 정말 재미있는 탁구를 보여주는 선수다. 일본에도 저런 선수가 있다면 침체 일로에 있는 일본 탁구의 중흥은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 할 정도다.
이러한 유가 서울이 아닌 외국에서 개최되는 대회에만 나가면 왜 기대 이하의 부진을 보이는가.

<장염도져 부담>
유남규 본인은 그 이유를 신체 적응 문제와 어깨 부상 두 가지로 들고있다.
유는 완치가 어려운 신경성 장염(장염)을 앓고 있어 물(수)과 음식이 바뀌기만 하면 상당한 고통을 받아 신체적으로 정상의 컨디션 유지에 애를 먹고 있다.
유럽 선수에 비해 단신(1m68cm)인데다 백 드라이브가 약해 경기 중 체력 소모가 많은 유에게 외국에만 가면 찾아오는 배탈에 의한 탈수 현상은 심각한 약점이 아닐 수 없는 것.
반면 유가 툭하면 내세웠던 왼쪽 어깨 부상은 북경 아시안게임 직전 서울대병원에 입원, 정밀 검진 결과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었다.
어깨 관절을 지나치게 사용, 연결부위인 점액포 (점액포)내의 윤활유 격인 점액이 닳아 안정을 요하는 증상일 뿐이라는 것.
탁구계 에서는『문제는 장염이나 부상이 아니라 유의 지나친 스타 의식과 자만이 더 큰 것 같다. 유가 너무나 확실한 국내 정상이라 탁구계의 의존도가 지나쳐 오늘날 독불장군으로 오도하고 만 것 아닌가』 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독불장군"자만>
일례로 개인 승용차(쏘나타) 에 차 값과 맞먹는 돈을 들여 요란스레 치장해 외제차 처럼 만들고선 초스피드를 즐긴다 든가, 경기장에 사인을 받으러 몰려드는 팬들을 피하는 태도가 마치 술래잡기하듯 장난기가 섞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신의 인기를 만끽하려는 심리의 표출) 성인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는 경우가 허다한 사실이 이를 직·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22세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수입(연 수입8천만∼9천만원 상당)이 유의 특이한 성격을 자극, 유달리 기고 만장토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유를 이토록 냉정하게 평가하는 탁구관계자 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동안 특정 스타에게만 의존, 협회의 명예가 걸린 국제 대회 성적에만 연연해 폭넓은 후진양 성을 게을리 해 온 대한 탁구 협회 지도부의 무사안일을 싸잡아 성토하기도 한다.
여기에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시각이 있다.
자칭「탁구기술자」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대표팀 윤길중(윤길중)코치의 말이다.
『선수를 만들어 내는 기술자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한다. 기량의 개발 여부를 떠나 훌륭한 재목이란 스타 의식이라고 하는「끼」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수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교육적으로나 성격적으로는 미흡하지만 기술이 뛰어난 선수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면 기술자는 어쩔 수 없이 기능 쪽을 고를 수밖에 없다. <김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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