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중앙일보 서울국제마라톤] 보스턴 우승 야마다 완주 관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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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게이조(75)는 1953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다. 야마다는 지난달 31일 대전에 내려가 어린 시절 자신의 영웅이었던 고(故) 손기정 묘소에 소주를 뿌리고 왔다. 그리고 중앙마라톤에선 고령에도 불구하고 3시간46분22초에 풀코스를 완주했다.

제5회 중앙일보 마라톤은 개인적으로 2백90번째 완주한 마라톤 풀코스였다.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지 꼭 50년 만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한 대회였다.

코스는 깔끔했다. 보스턴처럼 힘들지 않았다. 반환점 직전에 얼마간의 오르막이 있었지만, 오히려 코스를 더 맛깔나게 하는 '양념'이었다. 88올림픽 때 달렸던 코스와 겹치는 구간도 있어 옛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도로 상태도 빼어났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 사람들이 선수들과 함께 달리며 스프레이 소염제를 뿌려주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했지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풍경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본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도로면이 매끄럽고 안정적이란 얘기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날씨였다. 지난해에는 약간 추웠는데 올해는 반대였다. 출발할 때는 14.6도, 골인할 때는 17도까지 올라갔다. 마라톤을 하기에는 조금 더운 날씨였다. 그 점을 감안하면 엘리트 남자 우승자 기록인 2시간9분15초는 좋은 성적이다. 또 엘리트 여자부에서 2시간30분50초를 기록한 정윤희는 이제 겨우 스물한살이라 앞날이 기대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일반 참가자들이었다. 달리는 동안 10~20명씩 꾸려진 그룹을 곳곳에서 봤다. 노련한 리더가 앞에서 페이스를 조절해 주고 있었다. 일본에선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30년 전에 고(故) 손기정 선생과 함께 한국의 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맡은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마라톤은 '배고픈 종목'이었다. 선수는 통틀어 15명 정도에 불과했고, 합숙훈련 장소가 없어 군부대 안에서 뛰었다. 지금은 일본 마라톤과 견주어도 될만큼 발전했다.

그리고 출발부터 골인까지 친절하기 짝이 없는 자원봉사자들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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