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규제 하루 만에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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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서울 을지로 본점 직원들이 17일 대출 가능 여부를 묻는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 대출이 20일 전면 재개된다. 신규 대출이 중단됐던 게 지난주 금요일인 17일이었으므로 사실상 하루 만에 대출 제한이 풀리는 셈이다.

이번 조치는 금융감독원의 창구지도 형식으로 이뤄진 대출총량규제가 불합리하다는 여론의 비판과 실수요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는 시중은행들의 건의를 금감원이 받아들인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주택 마련을 위해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이번 주부터 정상적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금감원은 현장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창구지도로 감독 당국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소비자들의 혼란만 초래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이달 들어서도 급증하는 주택담보 대출 경쟁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을 뿐 대출총량규제를 지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19일 국민은행 관계자는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까지 대출이 어려워지는 등 혼란이 생겨 17일 금감원에 건의를 했다"며 "의견 조율 끝에 실수요자들에 대한 대출은 정상적으로 해주기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출총량규제는 없다"며 "실수요자들에겐 제한 없이 대출을 해줄 계획이나 투기성 수요나 가수요임이 분명하거나 상환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일부 고객에 대해선 대출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도 "'신규 주택대출 취급을 전면 중단한다'에서 '실수요자들에게 절대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출을 재개한다'로 원칙이 바뀐 상태"라며 "사실상 대출 영업이 재개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주 후반 금감원으로부터 대출 자제 요청을 받았던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개 시중은행과 농협은 일선 지점에 주택담보 대출을 정상적으로 재개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당분간 본점에서 간접 규제 방식으로 대출 심사에 간여할 계획이다. 신한은행 고위 관계자는 "월 4000억~5000억원이었던 주택담보 대출 증가액이 이달 들어 15일 만에 70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시장 분위기가 과열됐다"며 "당분간 본부에서 간접규제 방식으로 증가액을 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우리.하나 등 이달 들어 주택담보 대출이 많이 늘지 않은 은행들도 정상적으로 주택 대출을 할 예정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투기과열지구에도 적용하고 상호저축은행.신협 등 비은행 금융회사의 주택담보 인정비율(LTV)을 낮추는 등 정부의 11.15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 금융규제는 20일부터 적용된다.

한편 10월 말 현재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산업은행 등 특수은행 제외)이 335조122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51.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업대출은 310조9120억원으로 48.1%에 그쳤다. 주택담보 대출 등 가계대출이 기업대출보다 많아진 것이다.

이에 앞서 1995년의 경우 시중은행 대출 중 기업대출이 72.8%였고, 가계대출 비중은 이의 3분의 1 수준인 27.2%에 불과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투자 위축으로 기업의 은행 대출 수요는 줄어든 반면 저금리와 부동산값 상승으로 인해 가계대출은 크게 늘었다"며 "은행들이 새로운 대출 대상을 찾기 힘든 만큼 가계대출 비중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렬.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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