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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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영방송사만 존재했던 소련에서 당국의 정식설립인가를 받은 소련 최초의 자유민간방송사가 마침내 시험방송에 들어감으로써 소련언론자유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에호 모스크바(모스크바의 메아리)」란 간판을 내걸고 방송전파를 내보내기 시작한 이 소규모 라디오방송국의 스튜디오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부근 라디오협회 건물 내에 자리잡고 있다.
마이크·녹음기 등 중고 방송설비가 가득 들어찬 20평 남짓한 규모의 스튜디오에서 4명이 전부인 전 스태프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의 2시간 방송을 위해 비지땀을 쏟고 있다.
이 소련 최초의 「민방」설립에 자금을 댄「설립주주」는 급진 개혁파 인물로 알려진 포포프 시장이 이끄는 모스크바 시 당국이다.
이와 함께 인기주간지 아가뇩지, 라디오협회, 모스크바대학의 신문학과 등 이 설립에 참여했다.
지난 8월 22일부터 시험방송을 시작한 에호 모스크바방송은 관영 타스통신을 일절 받지 않고 주로 AFP·로이터 등 서방통신사들이 보내 오는 뉴스를 인용, 보도하고 있다.
이밖에도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자원봉사기자」가 현장에서 직접 리포트 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방송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세르게이 코르무즈씨(34)는『뉴스든 인터뷰든 모두 생방송으로 처리하는 점이 자유 라디오방송의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소련의 신문·잡지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에 힘입어 최근 상당수준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부터는 언론자유 법에 따라 그때까지 당이 실시해 왔던 언론검열이 사실상 사라져 언론자유화가 한층 가속화돼 왔다.
이에 따라 자유보도의 선두에 서 온 개혁파 주간지「논거와 사실」「모스크바뉴스」, 경제지「콤메르산트」등은 폭발적인 부수 신장 세를 기록했다.
반면 당 기관지인 프라우다는 같은 기간 중 급 전락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큰 폭의 부수 감소에 당황한 프라우다는 최근 광고 부문을 신설, 지난달부터 컴퓨터광고와 기술자문회사의 선전광고 등을 처음으로 싣기도 했다.
신문·잡지 계와는 대조적으로 소련의 TV·라디오방송국은 예외 없이 국가TV·라디오위원회의 절대적인 통제를 받는 국영방송국 일색이었다.
언론자유법도 방송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영방송사에도 마침내 개혁의 물결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독자적인 TV·방송국을 보유하고 싶다』고 선언하면서부터 방송국에도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
이와 같은 분위기를 이용, 개혁파들이「보다 자유로운 방송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본격적인 민간방송설립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새 민방은 경영수지의 확보라는 만만치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광고에 의존할 의사를 표명하고 있으나 모스크바에 진출한 맥도널드 햄버거 상점 앞에 늘 장사진이 형성되는 상황하에서는 이들 합작기업들로부터 광고를 기대하기는 아직 무망한 형편이다.
결국 시장경제로의 이행과정에서 신규 출현한 민간기업에 광고를 기대할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산적한 상태다.
그러나 설립자의 한 사람인 코르무즈씨는『스태프와 방송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 내년에는 24시간 방송체제로 돌입할 예정이다. 재미있고 신선한 뉴스와 방송을 만들어 낸다면 청취자도 늘고 광고도 신장될 것이다. 국영방송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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