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만 좇다간 민심은 떠난다/장두성(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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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보노라면 우리 정치인들은 과연 1년 남짓한 기간이 지나면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저 하루하루 인기만 생각하는 연예인들처럼 국정의 대도는 외면한채 눈치보기에만 여념이 없다.
의회민주주의의 요체는 임기가 끝난 다음 그동안 각 정당,소속의원이 내어놓을 수 있는 실적을 가지고 국민의 신임을 묻는데 있다. 그런 실적은 찰나적 인기와 특정집단의 호응을 따르다가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정부정책의 평가와 추진을 위해 어떤 생산적 역할을 했으며 야당은 야당대로 이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잡는데,또는 자기들의 정책방향과 상치될 경우 얼마만한 반대기능을 발휘했는지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용기가 따르는 신념을 갖고 한때 인기없는 정책이라도 국가의 앞날을 위해 필요하다면 밀고 나가는 지혜와 용기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빠르면 92년 정초에 있을지도 모르는 다음 총선에 이들은 무엇을 자신들의 실적으로 내어놓을 것인지를 생각이나 해봤는지 알 수가 없다. 또 허황된 공약이나 남발하고 돈봉투나 뿌리면 다시 당선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안주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시간에 쫓기면서,자꾸 줄어드는 지지기반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강박관념에 쫓기면서 통치권자로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당장의 인기영합주의에 빠져있다는 느낌이다.
이래가지고서는 6공의 주과제인 개혁도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그나마 취약한 국민들의 지지도를 지키기 조차 못할 것이 뻔하다.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은 국민의 정치의식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는 딴판으로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것은 확연히 드러난다. 단적인 증좌는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가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수보다 훨씬 많다는 계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최근 민자당의 보기 흉한 내분이나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명분 약한 단식투쟁 이전에 나온 것인만큼 지금은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13대 국회는 5공청산,악법 개폐,중간평가 여부,3당합당에 의한 인위적인 거여 출현,지자제 입법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거론,혹은 처리된 거대한 변혁기였다.
이러 사안들을 놓고 과연 어느당이 떳떳하게 처신했다고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어느것 하나 국민들이 속시원하게 느끼도록 처리된 것이 없다. 모두가 밀실야합으로 처리된뒤 기정사실로 국민앞에 제시되거나 파당적 싸움질에 몰두하느라고 손도 써보지 못하고 지금의 정체국면에 빠져 있다.
그런 모습은 오랜만에 민중의 투쟁으로 쟁취해준 의회민주주의를 정치인 스스로가 오손했다는 배신감과 분노를 국민들 마음속에 심어 주었을 따름이다. 그 배신감과 분노는 다음 선거때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88년 4월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여소야대의 선거 결과를 가져온 바람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 간간이 실시된 보궐선거는 민심이 기존의 정치틀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 바람은 온갖 금권과 부정의 동원을 이겨낼 수 있는 유권자의 잠재력이 커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이 힘이 이번 국회가 더욱 심화시킨 정치에 대한 혐오감으로 어떤 가속을 얻고 있는지를 정치인들은 신경을 써야 될 것이다.
우리 정치가 이 지경에 이른 주책임은 물론 정당구조를 민주화하지 않은채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정당 수뇌부에 있다. 노대통령과 3김씨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좁은 입지를 넓히는 방법으로 대도를 택하지 않고 인기영합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노대통령은 6공들어 제기된 거의 모든 주요 현안에 대해 자신의 비전을 일관성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여론의 향방에 따라 이쪽으로도 가고 저쪽으로도 가는 혼란을 보여왔다. 특히 중요한 과제인 남북관계에 있어 그 성과가 가져다 줄 정치적 이득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중요 제의가 나올때마다 정부안에 혼선을 빚은 것은 그런 인상을 더욱 깊게했다.
그런 인상 때문에 노대통령이 한소,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의도도 외교에서 점수를 따 내정에서의 난조를 만회하려는 인기영합이라는 의구심까지 낳게 했다. 3당통합이 이루어진 후에도 민자당이 과연 개혁을 지향하는가,수구로 돌아서고 있는가 국민들의 확실한 방향감각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도 청와대쪽의 지나친 여론의식 때문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세 김씨도 인기영합 성향은 마찬가지다. 본질문제에는 확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수해현장이니 태릉선수촌 방문을 누가 먼저 하느냐 내기나 하는 듯 유치한 경쟁을 벌이고 걸핏하면 기본 정치의 틀을 외면하고 장외로 나가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려 했다.
그러나 앞으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1노 3김 모두 자신들과 자신들이 속한 정당이 지금의 옹색한 지지기반을 넓히려 한다면 의회민주주의를 키워나가고 민주화개혁을 향한 노력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변덕 심한 인기와 여론만 쫓다가는 결국 민심을 잃게 될 것이다.
때로 인기가 없더라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면 비판을 감수하면서라도 일관성 있게 추진해나가는 용기있는 신념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결국 민심을 사고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넓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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