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베트남과 북한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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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고 있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활기차다.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거대한 행렬이 거리를 뒤덮고 있다. 상가는 불야성이다. 곳곳에 걸린 APEC 깃발이 도시의 생동감을 더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8% 성장, 문자 해독률 94%, 올해 예상 해외투자유치액 60억 달러(약 5조5000억원). 20여 년 전 미국과의 전쟁(1960~75년)으로 초토화됐던 베트남의 현주소다.

12일 개막한 APEC회의에 이 나라는 전체가 들떠있다. 팜지아 키엠 부총리는 "건국 이래 최대 행사"라고 흥분했다. 대규모 인력 투입으로 컨벤션센터를 200일 만에 완성했고, 수천 명의 학생을 20개국 손님맞이에 동원했다. 행사의 절정은 1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입국이다. 69년 전쟁 중 당시 월남(남베트남)을 찾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이래 현직 미국 대통령의 첫 방문이다.

16일 미국 대표단 숙소인 셰러턴호텔 주변에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적과의 대치가 아니다. '과거 적의 편안한 동침'을 위한 일이다. 미국과 전쟁에서 120만 명이 숨진 나라지만 반미의 외침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통역요원인 린 우웬(20.하노이대 영문과 3년)은 "전쟁은 과거의 일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 발전"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미국과 전쟁을 치른 또 하나의 나라, 북한이 화제가 되고 있다.

15일엔 한국.미국.일본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모여 회담 재개 방안을 협의했다. 16일엔 10여 개국 외교장관이 모여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했다.

아시아와 태평양 연안국 대부분이 모인 자리에서 '골칫덩어리' 북한의 존재가 다시 한번 부각된 것이다.

18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에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도이모이(쇄신)'라는 정책으로 매일 새로워지는 나라에서 핵무기 하나로 세계를 상대하며 궁핍에 허덕이는 나라의 운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전쟁을 치렀지만 이처럼 명암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두 나라. 베트남과 북한의 차이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정보통신 기술과 다국적기업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의 체제가 됐다"고 역설했다. 북한도 싫건 좋건 인민을 굶기지 않기 위해 베트남이 걸어온 길을 따라야 한다. 세계에 문을 열어 오늘날 베트남이 되었고, 세계에 문을 닫아 북한이 됐다.

이상언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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