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 복지관 가락상담소 자원봉사 박경란씨|장애 어린이에 사랑 심는 "처녀스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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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장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한쪽 귀퉁이에 내몰린 채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작은 길잡이가 돼 배움의 문턱에 들어서게끔 애쓰고 있는 처녀스승이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서울시립 남부장애자 종합복지관 가락상담소에서 공부방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고있는 박경난씨(23·서울 노량진 2동 294의 151)가 그 주인공. 지난9월13일 문을 연 이 공부방에 매주 월∼금요일 빠짐없이 출근(?), 오후4시부터 90분간 4명의 장애 아동들에게 개별 학습지도를 해주고있다.
서울시로부터 가락 주공 아파트 23평 규모 2채를 위탁받은 남부장애자 종합복지관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특수학교에도 다닐 수 없는 장애아를 위해 공부방을 열기로 하고 교사를 찾는다는 말을 선배로부터 전해들은 박씨는『부족하지만 열심히 이들을 돕겠다』는 생각 하나로 자원봉사를 맡고 나섰던 것.
강남대 특수교육학과를 거쳐 현재 인천 간호보건전문대 물리치료학과 2학년 휴학중인 이는 『정식으로 훈련된 교사가 아닌 까닭에 두려움도 많고 걱정이 앞섰지만, 선배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공부하면서 가르치다 보니 요즘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는 것 같다』며 웃는다.
1년간 특수학교를 다녔으나, 가정형편으로 휴학해 버린 청각장애자(9)와 일반학교 1학년으로 학습부진을 겪고 있는 그의 동생(8), 역시 일반학교를 1년간 다녔으나 도저히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중단해 버린 자폐아(11) 및 받아쓰기 등에 장애를 가진 학습부진아(12)등이 그가 심혈을 쏟는 사랑스런 제자들이다.
『학교공부시간에는 아동들의 통제가 가능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못해「공부시간에는 의자에 앉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데만도 학생 당 배정된 20분의 수업시간이 다 지나가 버려 수업을 끝내고 나면 막상 무엇을 가르쳤는지 모를 정도인 날이 많았지요.』
게다가 학습부진 등을 겪고 있는 아동들의 특성으로 집중력이 부족해 같은 내용을 수십번씩 되풀이 해야하는가 하면, 잠시만 눈을 떼고 있어도 창틀에서 뛰어 내린다든지 하는 엉뚱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늘「긴장의 연속」이라고 그는 들려준다.
모두가 장애를 지니고 있는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어느 한 학생과도 완벽한 의사소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 특히『공부방 제자들이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홉 살 짜리 청각장애자의 흉내를 내곤 할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제자들이 알게됐다는 작은 사실을 발견할 경우 그간의 어려움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기쁘다. 쓰기에 심한 거부감을 보이던 장애아가 어느 날 연필을 쥐기 시작했을 때 느끼는 보람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누구에게나 학습의 기회는 제공돼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녀가 장애아라고 하여 포기하지 말고 장애 정도에 맞게 공부시켜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88년 장애자 올림픽 당시 배구코트 연습장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기도 했던 그는『외국 장애인들은 장애라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조금 불편한 것 정도로 인식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무척 인상깊게 남아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의 장애인에 대한「특별취급」이 없어지길 희망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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