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워싱턴의 「시위문화」/문창극 워싱턴 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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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요일이었던 28일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미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대로가 수천명의 경찰에 의해 차단됐다.
역사의 유물로만 남아 있을 법한 악명높은 백인우월단체 쿠 클럭스 클란(KKK)단의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남부 조지아주등에서 올라온 27명의 이들 때문에 워싱턴 경찰은 5천여명의 경찰을 동원하고 단 하룻동안 80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경비를 썼다.
경찰의 임무는 시위를 막는게 아니라 보호하는 일이었다.
미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군 국기를 앞세운 시위대는 흰 삼각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흑인들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없다』『흑인남자는 백인여자와 결혼할 수 없다』는 등 인종차별 구호를 외쳤다.
수천명의 흑인 및 인권운동가들이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골목골목 모였다. 그러나 KKK단 시위는 경찰의 보호로 무사히 예정된 시간에 끝났다.
경찰이 이들을 보호해 준 까닭은 이들의 집회가 합법적인 평화적 시위였기 때문이다.
워싱턴 경찰당국은 이들이 시위계획서를 제출하자 골머리를 앓았다.
흑인이 절대다수인 워싱턴 시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평화적인 시위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이들에게 시위구간을 줄이도록 사전 설득도 했다. 시위구간이 길 경우 워싱턴경찰 병력으로는 물리적으로 신변보호가 어렵다고 사정도 했다.
그러나 워싱턴 지방법원은 KKK단의 요구대로 전구간 시위를 허락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미국 헌법은 평화적인 시위와 집회를 보장한다는 근거에서 였다. 재판부는 KKK단의 평화적 시위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다른 모든사람의 시위권리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는 견해였다.
그것은 KKK단이 옳아서가 아니라 언론ㆍ집회의 자유라는 기본인권의 실현을 위해서였다.
시위가 무사히 끝나자 인권연맹의 한 간부는 『이는 KKK단의 승리가 아니라 자유언론의 승리』라고 외쳤다.
평화적 시위의 신청에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이를 불법화,강제진압하기가 능사고 시위를 했다하면 최루탄ㆍ화염병이 난무하는 우리의 시위문화와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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