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잃어버린 10년 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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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특별대책반 회의가 14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재정경제.건설교통.환경부, 기획예산처, 주택공사, 토지공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회의를 주재한 박병원 재경부 차관이 회의 자료를 앞에 놓고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부동산 광풍'으로 한국 경제 자체가 멍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정책에만 매달리다 보니 경기 활성화와 성장잠재력 확충에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광풍으로 인한 가계부채 급증이 소비 부진과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한국 가장 심각한 위험은 정책 마비"=블룸버그통신의 경제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14일 '한국, 일본식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위험 직면'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1997년 외환위기를 잘 극복해 일본의 모범이 됐던 한국이 이제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현재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위험은 정책 마비(policy paralysis)"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경제에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낮은 지지율과 대선을 앞둔 내분 등은 현 정부가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데 필요한 만큼 (정책을) 조율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페섹은 현재 한국 부동산 가격이 거품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만일 일본처럼 한국 부동산 가격이 갑작스럽게 붕괴한다면 경제에 큰 충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와 원화 강세, 고유가가 매우 나쁘게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한국이 90년대 일본을 괴롭혔던 것과 아주 흡사한 늪에 빠질 위험에 봉착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가 잘 대응하면 일본의 90년대 경험이 되풀이되는 것을 피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집값 때문에 가계 부채 급증="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양치기 발언'이 반복되는 사이 가계 부채는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불어났다. 올 상반기 말 가계 부채는 517조원으로 참여정부 출범 전(391조원)보다 126조원 증가했다. 노 정부 출범 이후 5~6개월마다 '규제 폭탄'이 나왔지만 집값 급등이 이어지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사람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올 1~9월 중 가계대출 증가액 26조2000억원의 67.3%인 16조7000억원이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점이 이 같은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라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43.2%에서 올해 6월 말 44.3%로 올랐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현재 가계의 주택 관련 대출은 소득 대비 능력을 넘어섰다"며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빚 때문에 소비는 줄어=지난해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 급매물을 빚까지 내 6억원에 산 김모씨는 "집값은 10억원으로 올랐지만 빚을 갚느라 생활은 도시 빈민 수준"이라고 말했다. 집값은 올랐지만 대출을 갚느라 소비를 줄이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대부분 10년 이상 장기대출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소비 위축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아직도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많다는 점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추가 부동산대책을 내놓겠다는데도 집값 안정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인지 집을 사기 위한 대출 신청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이상빈 교수는 "부동산 후유증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자칫 버블 붕괴를 경험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며 "정부는 규제를 풀고 시장에 주택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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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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