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주체 사상 때문에 신종 안는다"|불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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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평양 시내에 서너개쯤 될 것」이라는 불교 사찰들 가운데 모란봉 구역 개선동의 국보유적 163호 용화사를 찾은 것은 지난 22일 오후 4시 무렵. 알록달록한 놀이 기구들이 들어찬 모란봉 어린이 놀이터 한켠에 자리잡은 이 절의 주지승 향암 선사는 대웅전 앞에서 기자를 맞자마자 북한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명함부터 선뜻 내밀었다.
「신사 김정국/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평양시 용화사주지」
지난 53년부터 이 절의 주지를 맡고 있다는 향암 선사는 「환영 예식」부터 치르자며 기자를 불상 앞으로 이끌더니 다라니경 독경에 이어 봉향제·발원문의 순으로 매우 이색작인 환영 의식을 마쳤다. 주지승의 잿빛 법복 아래로 옅은 갈색의 양복바지가 보여「달라진 불교의 모습」을 또 한차례 느끼게 했다. 그는 『룡화사는 1935년 공락문이라는 승려가 세웠고 50년대 초 「조국 해방 전쟁」중 폭격으로다 부서진 것을 곧 복구했다』고 밝히고 이 절에는 현재 3명의 승려가 있으며 신도들은 각 가정의 필요에 따라 이따금씩 찾아오는데 석가탄신일·성도일·열반일의 법회식 때는 3백명 가량의 신도가 몰린다고 전했다.
또 『우리 절의 신도는 거의가 노인들인데 그 숫자는 별로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면서 『나야 말사의 주지일 뿐이어서 전국의 신도 수 같은 건 짐작도 못한다』고 말했다. 남한의 절은 대개 조용하고 깊숙한 산 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비해 이 절은 유독 시끄러운 놀이터 안에 세운 이유가 궁금하다고 하자『그냥 놀러 나왔다가도 쉽사리 부처님을 찾아뵐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대답.
한편 서울서 온 기자를 안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조선 불교도 연맹 중앙 위원회 조직부 책임 지도원 이덕수씨는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는데 『불교도 연맹이 운영하는 불교학원에서 승려를 양성하며 전국의 승려는 약 3백명, 신도는 1만명 정도』라고 소개했다.『다른 종교도 비슷한 사정이지만 철저한 주체 사상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이들에게는 포교가 거의 불가능해 신도는 거의 노년층에 국한돼 있다』고. 모두 조계종으로 승리는 대부분 대처승이고 비구니는 한명도 없다며 『승려들은 오계를 철저히 잘 지킨다』고 강조했다. 조국 통일기원 법회나 불교의 3대 명절에는 전국의 승려가 모두 한자리에 모이며 또 불교의 운영비는 불교도 연맹 자금과 신도들의 시주로 충당하되 사찰 보수에 큰비용이 들 때는 국가가 지원한다고 했다.
북한에서 가장 대표적인 큰절로 묘향산 보현사와 금강산 표훈사를 꼽은 이씨는 『특히 보현사에시는 팔만 대장경 번역 사업을 모두 끝내고 책을 퍼냈다』고 자랑하면서 『홍기문 선생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원이 그 해제본을 만들어 이미 출판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북한에는 황해북도 연탄군의 심원사와 양강도 삼수군의 중홍사에 선방이 있다고 밝힌 이씨는『현재 평양시내 대성산에 건축중인 광법사가 완공되면 평양에서 가장 큰 새 절이 생기게 된다』며 불교의 교세가 점차 커지고 있음을 은근히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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