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칼럼

시장의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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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청와대 홍보수석이 강남 아파트 두 채를 가졌었다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잘못됐다는 것일까. 청와대 사람이든 누구든 간에 집 두 채 가진 게 도대체 무슨 죄가 되나.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갔고, 좁은 아파트에서 살다가 큰 아파트 분양에 당첨돼 살던 집을 팔고 이사 간 것인데 무엇이 그리도 잘못이라는 말인가. 한국 땅에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아온 셈이다. 그의 잘못은 자신의 이사 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과 같은 케이스를 과거에 앞장서서 비난했다는 경솔함에 있다. 그 경솔했던 비난이 이제 자신에게 쏟아질 줄이야.

어떻든 홍보수석의 '아파트 두 채'는 비난거리가 못 된다. 심지어 청와대에 근무하는 고위관료들이 강남에 많이 사는 걸 시비하는 언론도 있는데, 도를 넘는 시비다. 그런 시비를 계속 일삼으면 오히려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비난할 자격이 없어진다. 왠고 하니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의 본질이 바로 아파트 두 채 가진 사람이나 강남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죄인시하는 그릇된 정책 태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청와대 홍보수석이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비싼 강남 아파트에 살고 있는 현실은 노무현식 부동산의 한계를 말해 주는 좋은 방증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문제의 본질부터 들여다보자.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는 시작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야 오죽 바람직한가. 그러나 그의 실패는 시장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깔보면서 시작됐다. 시장을 깔아뭉개고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리석음을 진정한 용기로 확신했던 나머지, 시장과의 타협을 권하는 의견들은 철저히 정책결정 과정에서 배척당했다. 전무후무한 세금 공세가 전개됐다. 도망 갈 구멍을 틀어막고서 세금폭탄을 까 넣으면 제까짓 것들이 항복하지 않고서 배겨낼 재주가 있겠는가라며 몰아붙였다. 그러나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거래는 실종되고 값은 규제에 아랑곳없이 계속 오르고, 게다가 공격 목표였던 강남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요원의 불길처럼 투기 열풍이 번져나갔으니….

자고로 세금으로 부동산 잡은 사례가 없다는데 참여정부는 이걸로 승부를 걸었던 것이 불행이었다. 시장을 상대로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자"며 수십 번의 돌격 작전을 펼쳐 왔다. 결국 전과(戰果)는 참담한 부작용뿐이었다. 세금폭탄을 얻어맞은 시장의 복수의 독기가 기승을 부린 탓일까. 서슬 퍼렇던 정부 나으리들은 회복 불능의 망신 사태에 빠져들었고, 국민 불신은 한층 가중되었으니 말이다.

당분간은 기대를 접자. 아무리 추가 대책을 연발해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 이유로 정책의 총수인 대통령의 부동산관(觀)이 꿈쩍도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그는 도덕주의에 얽매여 시장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에 대한 적개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세금정책을 지금 와서 후퇴시키거나 수정할 참여정부가 아니다. 셋째, 강남에 대한 감정적 편향을 제거하고 아파트 재개발 등에 대해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지금까지의 정책을 감안하면 정부의 체면상 돌이킬 수 없는 입장이다. 넷째, 집값 결정의 주요 원인인 교육환경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줘야 하는데, 평준화 정책의 틀을 고집하는 상태에서는 이것도 기대하기 어렵게 돼 있다. 다섯째, 거시정책 면에서는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이런 경제 분위기 속에서는 선택 불가능한 대목이다. 여섯째,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공급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얼마가 될지 모를 비싼 대가를 치를 대로 치르면서 갈 때까지 가는 수밖에는 없다. 결국 당해 봐야 아는 가장 어리석은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느낌이다. 시장의 복수가 얼마나 혹독한가를 실감하면 그때는 정신을 차리겠지.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