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호 회장 "전경련 회장대행 못 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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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재계의 본산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흔들리고 있다. 손길승 회장이 중도 퇴진한 데 이어 후임 회장도 뽑지 못해 리더십의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경련은 지난달 30일 열린 회장단 간담회에서 천신만고 끝에 강신호(姜信浩.76)동아제약 회장을 회장대행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姜회장은 31일 '건강 때문에 도저히 못 맡겠다'고 밝힌 뒤 외부와 연락을 끊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실세 회장은 커녕 한시적 회장 대리인조차 세울 수 없는 현실이 초라해진 우리의 현 주소를 상징한다"면서 한숨지었다.

이에 따라 정치자금.노사 문제.이라크 파병.자유무역협정(FTA) 등 산적한 현안에 관해 전경련이 재계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회장대행 번복 소동=30일 열린 회장단 간담회에서 만장일치 박수 속에 姜회장을 회장대행으로 추대할 때만 해도 진통을 겪던 전경련 사령탑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1999년 11월부터 2년여 전경련 회장대행 및 정식 회장을 역임한 김각중(金珏中)경방 회장이 "나도 했는데 뭘 그러느냐"면서 극구 고사하는 姜회장을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姜회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 때문에 격무를 할 수 없다" "나같이 작은 회사 사람이 큰 기업 회장들을 부르면 잘 모이겠느냐"는 등 여전히 주저하는 상황이다.

전에도 회장 선임 때 우여곡절을 겪은 적이 많아 속단하긴 이르다.

전경련 사람들은 "회장이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되기 싫다고 안되는 것도 아니다"는 말로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현명관(玄明官)상근부회장도 31일 "姜회장이 강력히 고사해도 규정상 회장단의 최연장자가 회장직을 승계하도록 돼 있어 어쩔 수 없이 대행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회장추대위원회를 구성해 내년 2월 총회 이전이라도 정식 회장을 뽑도록 서두를 방침이다. 하지만 姜회장이 마음을 돌리더라도 예전처럼 실세 회장 체제가 복원되지 않는 한 전경련의 위상 회복은 요원하다.

◆제 기능 다할 수 있을까=전경련의 입지도 예전보다 훨씬 약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전경련은 "정치자금 제도 개혁이 없으면 돈을 내지 않겠다"며 "이는 내년 총선 때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에도 이런 식의 결의가 번번이 식언으로 끝났던 데다 예전 같지 않은 회장단의 면면 때문에 신뢰는 많이 떨어진 상태다. 실제로 30일 열린 간담회는 전경련의 차기 수장을 뽑는 중요한 자리였는데도 삼성.LG.현대차 등 '빅3' 회장이 불참했다.

회장단 참석도 정원 22명의 3분의 1에 가까운 8명에 그쳤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자금 사건이 재계 전반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재계가 힘을 모아 대응하는 구심점 노릇을 전경련이 계속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차제에 시장경제원리를 전파하는 싱크탱크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다른 경제단체와 짝짓기를 모색하든지 하는 '전경련 발전적 해체론'이 더욱 힘을 얻는 분위기도 이 때문이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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