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거여 또 내각제 돌풍/고함ㆍ삿대질속 끝난 민자의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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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계,청와대 감 잡고 조직적 대YS공세/“당 깨자” 원색발언… 지자제협상 영향끼칠 듯
22일 열린 민자당 의원총회에서 민정계와 민주계가 정치권의 최대 현안인 내각제개헌 추진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을 벌여 연말까지의 당내 의견조정을 겨냥한 민정계의 내각제 공세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날 민정계에서는 이치호ㆍ김중위ㆍ강우혁 의원이 차례로 나와 내각제의 강력한 추진,내각제와 지자제를 야당과의 협상에서 맞바꾸는 방안 등을 제시했고 『야당에 끌려 다닐 바에야 당을 해체하는 것이 낫다』는 극한 발언까지 나왔다.
민주계에서도 그동안 민정계 의원들 사이에 물밑에서 떠돌아 다니던 이런 소문들이 표면화된 점을 중시,조직적인 반발을 도모하는 전략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날 발언한 이치호 의원은 5공 때 내각제 개헌문제를 추진한 바 있는 내각제 전문가로,김중위 의원은 서울시 당위원장이며 민정계 초ㆍ재선 의원그룹의 대변인격으로,강 의원은 청와대정무수석과 내무부관직을 두루 거친 지자제 이론가로서 모두 민정계의 내각책임제 추진그룹에 속한다.
따라서 이들의 이날 발언은 민정계내의 최근 움직임을 부각시킨 의도성 짙은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들은 요즈음 민정계내 중진그룹들과 잦은 접촉을 가졌으며 김영삼 대표의 최근 움직임 및 발언 등과 관련,사발통문을 돌려 조직적 비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계측은 우선 지난 11일 단식중인 김대중 평민당 총재를 방문,1시간 동안 밀담을 나누면서 김영삼 대표가 지자제와 내각제 문제에 관해 김 총재에게 모종의 밀약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김 대표가 내각제 개헌을 하지 않기 위해 내각제와 맞바꿀 최대의 협상카드인 지자제 문제를 대가없이 평민당에 준 저의에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김중위 의원이 『지자제협상 과정을 보면 김 대표가 김 총재를 찾아가서 무릎꿇은 꼴이 됐다』고 김 대표를 직접 비난하고 『단식현장이나 끌려다니고 거기서 협상안을 내놓는다면 여당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다소 도발적인 발언을 한 데는 이런 불만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강우혁 의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현재 여야협상 과정을 보면 야당에 아무것도 얻어낸 것 없이 그냥 다 내준 것 아니냐』며 『지자제문제는 모든 정치일정과 관련해 심도있게 다루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발언들은 지자제와 내각제의 연계협상을 해야한다는 청와대쪽 구상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일 부산에서 『나도 내각제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김대중 총재를 만나보니 완강히 내각제를 반대하더라』고 내각제 개헌을 하기 어려운 이유를 야당에 돌렸는데 그것도 민정계의 반발을 촉발한 요인이 됐다.
민정계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내각제 개헌을 하지 않고 야당에 끌려다닐 바에야 3당통합을 무엇 때문에 했느냐』는 회의가 한계상황에서 폭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의총 후 민정계 의원들은 발언자들을 찾아가 「격려」해 내각제와 지자제 문제 등에 관해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보여주었다.
민정계에서는 지난주 노태우 대통령이 김 대표와 청와대에서 단독회동 했을 때 『내각제가 안되면 김 대표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는 소문도 퍼뜨리고 있다.
김 대표의 「내각제 매력」 발언도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서 내놓은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런 소문의 진위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민정계 의원들을 고무시키고 있음에 틀림없다.
○…민주계에서는 최근들어 부쩍 이치호 의원 등 민정계 본류쪽이 당무회의나 의총 등에서 발언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을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같은 민정계의 조직적인 공세가 청와대의 동향과 무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민정계 전략의 전면 재조정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 대표도 이날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회의가 삿대질과 고함ㆍ반말 등으로 난장판이 되자 『이제 그만하자』고 만류하고 자리를 뜬 뒤 오후 2시부터 속개된 국회본회의에 불참했으며 일부 민주계 의원들은 『이럴 바에야 차리라 당을 깨는 게 낫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이날 격돌이 느슨한 상태로 운영되던 민주계의 단합을 촉발,민정계외 일언불사를 각오할 경우 당내분규가 재연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민정계에서는 연내에 개헌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민자당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란 우려의 소리도 높다.
민정계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이 연내 사회안정을 위해 범죄와의 전쟁까지 선포한 마당에 정면충돌은 자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긴 하다.
다만 이날 의총에서의 격돌은 내년초 내각제를 둘러싼 대회전을 앞둔 당내 이견조정이란 전초전의 성격을 띤 것으로 민정계의 대YS 압력용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민정­민주계의 갈등은 막바지에 이른 여야간 지자제협상에도 영향을 미쳐 지자제 단체장의 정당공천 허용문제에 대해 양보할 수 있는 폭이 훨씬 제한될 수밖에 없어 타결점을 찾기 어렵게 만들 지도 모른다.<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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