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희 칼럼] 나비 앉으니 ‘꽃잎’ 떨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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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낮은 목소리와 비음(鼻音)으로 흥얼대듯 부르는 심수봉의 노래는 그 특이한 창법 때문인지 언제 들어도 구성지다. 필자가 비뇨기과학을 전공한 직업적 특성 때문일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표현이 그 성적 특성을 은유적으로 잘 그렸다고 생각된다. 거친 풍랑과 싸운 뒤, 한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포근한 여인의 품 같은 항구로 찾아드는 남자의 고독이 잘 그려져 있어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즐기는 零ː樗?되어 있다.

그런데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멋진 표현은 아마도 꽃에서 유래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속담에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이지, 꽃이 나비를 찾는 것이냐”라는 말이 있는데, 수컷이 가진 동물적 속성을 비유한 말로 배와 항구의 관계와 비슷하다. 남자가 능동적으로 쫓아다니다가 사랑에 골인하는 것이지 여자가 남자를 쫓아다닐 수는 없다는 단순한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 이유는, 성기의 심리학 또는 성기에 집중되는 본능적 감정이나 구애에서 보여주는 능동적 또는 수동적 태도와 마찬가지로 그 속에 꽃과 나비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독자는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을 표현한 시 한 구절을 읽으면 그 뜻을 능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 빠져 내 마음도 나비가 되면 꽃의 자태에 달라붙어 잠잔다.” 이 시구를 읽으며 필자는 성의학의 오소리티 마리 스톱스의 유명한 글귀가 생각난다.

“나비는 배가 가득 차더라도 곧 꽃에서 날아가지 않는다. 꽃잎 하나에 붙어 꿀에 침을 꽂은 채 편안하게 잠든다. 평안과 조화…. 나비는 꿀의 생명을 받고, 꽃도 나비의 영혼을 녹여 다소곳이 받아들인다. 정답게 붙었다가 날이 밝음과 동시에 날개를 펴서 날아가기도 하고 조용히 나뭇가지 끝을 맴돌기도 한다.”

언뜻 보면 파브르의 곤충기를 해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톱스가 섹스 형태의 한 가지인 보류성교를 찬미한 글이다. 오르가슴에 이르기까지 열중하지 않고 성기를 결합시킨 채 잠드는 성교법을 스톱스는 보류성교라고 명명하고 그 기법을 나비의 활동에 견주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꽃과 나비로 남녀 양 성기를 상징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문헌을 찾아보면 동서양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학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여성의 성기는 꽃에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에는 여성의 소음순을 꽃잎이라 칭하고 남성의 커니링거스를 꽃잎에 묻은 꿀물을 빤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지성인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말할 때 여성의 첫 성교를 영어로 defloration(꽃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칭하고 말하는데, 이런 은유적 표현이 동양권에서 절화(折花: 꽃이 꺾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자 성기 자체를 점잖은 사람들은 ‘꽃의 문’, 영어로는 ‘flower gate’라고 부르고 좀 더 은유적으로 말하는 경우에는 그냥 ‘장미’ 또는 프랑스어로 ‘로제’라고 칭한다. 그리고 자궁을 말할 때에는 ‘화심(花心)’이라고 부르는 것이 점잖은 말이라고 하니 신사가 되려면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인가 보다. 아무튼 꽃과 나비의 배합은 에로틱한 유희를 연상케 한다.

인간은 삼라만상 일체를 성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암컷과 수컷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 중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의 존재이므로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런 인류 공통의 성적 상징을 열거한 뒤 “인간은 마치 성적 상징물에 에워싸여 살고 있는 것과 같다”고 선언했다. 각국의 전설, 신화, 우스갯소리, 그리고 토속화, 즉 풍습-습관-언어-가요-시구-속어 등을 수집해 면밀히 조사한 결과 그 속에서 인류 공통의 사고방식을 파악했는데, 바로 그것이 남성과 여성 또는 암수라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임을 자랑하는 인간의 정신이 ‘욕구’라는 원시적 형태에서 비롯한 것처럼 세상 만물의 의미도 그 기원을 따지고 보면 성 또는 성기에서 파생된 것들이 많다.

곽대희 피부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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