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병 주고 약 주는 제약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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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질병판매학

레이 모이니헌 외 지음, 홍혜걸 옮김

알마, 312쪽, 1만5000원

조금만 긴장하면 아랫배가 싸르르 아파온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낯이 붉어진다, 생리를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진다…. 의학적으론 '과민성 대장증후군''대인 공포증''월경 전 불쾌장애' 등으로 불린다. 이름만으론 영락없는 질병이다.

그러나 배는 가끔 아플 수도 있고, 성격에 따라 낯을 가리기도 하고, 누구나 사소한 일로 예민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정도면 병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질병에 대한 두려움 탓에 굳이 약을 사먹는 사람도 많다. 이 때 건강해지는 쪽은 누구일까.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정상인일까, 아니면 제약회사의 재무구조일까.

저자는 이 같은 음모론적 의문에서 출발한다. 사실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시장구조가 제약사의 성장엔 큰 장벽이다. 이를 뛰어넘어 제약사들이 개척한 '블루오션'이 '건강한 정상인 시장'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제약사가 건강한 사람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하나다. 정상과 질병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이 거 혹시 큰 병 아닐까"하는 의심과 두려움을 솔솔 부채질함으로써 정상인들도 약을 찾도록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새로운 질병 시장을 창조하는 마케팅 능력이야말로 제약사들의 돈벌이의 원천인 셈이다.'질병의 브랜드화'라고나 할까. 그 결과 제약사들은 약품을 마치 추잉검처럼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나는 혹시 제약사의 어수룩한 '봉'노릇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공동 저자인 레이 모이니헌(호주)과 앨런 커셀스(캐나다)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의학 저널리스트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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