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종류의 사람」에 책임묻자/송진혁(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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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정부의 선전포고는 그 필요성이나 취지가 충분히 인정되고 공감이 가는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하는 안타까움 역시 느끼게 한다.
범죄와 투기와 경제불안 등으로 인해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나온 것이 지난 5월이었는데 이제 우리 사회는 「난국」을 넘어 「전쟁상태」가 되었는가…정부는 그동안 뭘 어떻게 했기에 난국의 완화는 못했을 망정 「전쟁」까지 선포하게 됐는가…지난 5월에도 노 대통령은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연내안정을 위해 「비상한 각오」로 단호한 법집행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대로 난국에 걸맞는 비상한 대응을 했던들 5개월 후 다시 「전쟁」 선포는 없었을 게 아닌가…이런 아쉬움과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전쟁은 전쟁이다. 일단 선전포고를 한 이상 전쟁은 시작된 것이고 전쟁을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의 세태를 보면 전쟁이 아니라 전쟁할아버지를 하더라도 범죄와 폭력은 뿌리뽑아야 하고 과소비ㆍ향략풍조는 추방해야 한다. 문제는 전쟁을 이길 전략 전술과 용병이다. 어떻게 해야 이 전쟁을 이길 것인가.
중국 명나라의 고관을 지낸 여곤이란 사람이 지은 『신음어』란 책은 관리와 국가경영에 관한 중국의 명저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세간의 도의의 쇠퇴에 대해서는 세 종류의 사람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면 안된다. 권세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책하고,학식이 있는 사람을 책하고,기강을 어지럽힌 중심인물을 책하는 일이다. 이 세종류의 사람에게 책임을 추궁해야만 세간의 도의를 정상으로 돌이킬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권세있고 지위 높은 사람은 풍속과 교화를 좌우할 실권을 쥐고 있는데 그들이 먼저 그것을 깨뜨리면 서민은 모두 그것을 보고 따른다. 학식 있는 사람은 풍속과 교화의 도를 밝힐 책임이 있는 데 자신이 그것을 깨뜨리면 학식이 없는자는 모두 그것을 보고 따른다. 이 두종류의 사람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그는 「근본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풍속과 교화가 깨져버리면 그것을 하나하나 다 제거하기 위해 일일이 손을 쓸 수는 없고 그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자를 가려 천하의 본보기로 징계를 해야 하는 데 이를 「지엽말단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했다.
『신음어』는 왕조시대의 치정을 논한 것이지만 「세간의 도의를 바로 잡는」 이런 방책은 오늘날에도 경청할 만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대범죄 선전포고는 『신음어』 식으로 말한다면 「지엽말단을 바로 잡는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선전포고라는 초강경조치를 발동했지만 정부가 공권력으로 다스릴 수 있는 대상은 나타난 범죄일 뿐 그런 범죄가 나오게 된 우리 사회의 토양을 바로잡지는 못한다. 문제의 근본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근본을 바로잡는 조치」가 나와야 하는 데 그것은 곧 권력층ㆍ지도층과 지식층에 대한 책임추궁이요,그들의 도덕성 확립인 것이다.
오늘날의 범죄창궐이 불행한 우리의 정치역정과 무관치 않음은 누구나 지적한다. 정당하지 못했던 집권,정당하지 못했던 권력행사와 그로 인한 출세와 치부의 정치사가 한탕주의와 수단ㆍ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적추구의 사회풍조를 낳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정통성을 가진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사리ㆍ파리ㆍ당리 때문에 하루가 멀게 싸우고 욕설하는 정치권을 보고 국민이 양보와 화합과 질서 지키기의 미덕을 고무받았을리도 만무한 일이다. 정치보다 큰 교육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장관도 해 먹는데…』 『국회의원도 저런 짓을 하는데…』하는 「산교육」을 얼마나 받아왔는지 모른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언론과 지식층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이기자면 첫째 『신음어』의 충고대로 「지엽말단을 바로잡는 일』과 함께 「근본을 바로잡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정국을 정상화시키고 정부와 정치권의 신뢰를 회복할 일련의 조치를 취해나가야 한다.
공약을 지키고 민주화개혁을 추진하며 정당한 게임룰에 따른 정당한 정국전개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자기들은 「바담풍」하면서 국민에게 「바람풍」하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원래 아무리 좋은 일도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법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일은 범죄와의 전쟁에서 수행할 개개의 전투에서 부디 「자해적」 전술이 없어야겠다는 점이다. 범죄에 대한 강경대응과 중벌주의는 물론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ㆍ총기남발ㆍ직권남용ㆍ제도후퇴 등의 부작용을 가져온다면 모처럼 국민적 공감속에 시작한 전쟁의 결과를 위태롭게 할 게 뻔하다. 재야단체나 인권변호사들이 들고 나설 일이 빈발한대서야 그 전쟁이 어떻게 되겠는가.
또 실적주의로 흐른 나머지 일제단속이다,기습점검이다 하여 서민생업에 불편을 주어서도 안될 일이다. 원래 이 전쟁의 목적이 그들을 보호하고자 한 것인데 거꾸로 그들을 골탕먹여서는 전쟁을 이길 도리가 없다.
과소비를 추방한다 하여 여기저기 사람을 끌어모아 어깨띠 두르고 피킷 들고 플래카드 내걸고 하는 것도 과소비추방은 커녕 또다른 하나의 과소비를 저지르는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편을 적으로 내몰지도 모를 이런 자해적 전술이 나와서는 전쟁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우리는 불행히도 「근본」을 바로잡지 못함으로써 「지엽말단」의 전쟁부터 하게 됐지만 목전의 전투의 효율성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근본」을 챙기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편집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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