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공원·대도시·건축물…대지와 세상 모든 게 화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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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지미술가 크리스토(左)와 장 클로드는 뒤에 멋진 산이 사진에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역시 대지미술가다운 주문이었다. 김성룡 기자

10만㎡ 넓이의 은색 천, 설치전문가 120명 동원, 작업비 70억원(1995년 베를린 제국의사당 프로젝트).

높이 4.87m의 문 7500개, 총길이 36.8km, 자원봉사자 등 550명 참여, 작업비 210억원(2005년 뉴욕 센트럴파크 '더 게이츠(The Gates)'프로젝트)

대지미술가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부부(71)의 작업은 이렇듯 거대규모다. 대형 천으로 건축물을 포장하거나, 드넓은 강을 덮어 씌운다. 공공장소이다 보니 의회나 시를 설득하는 데 수십년이 걸리기도 한다. 작품을 계획해서 설치하기까지 베를린은 23년, 뉴욕은 장장 26년이 걸렸다.

이 땅에 '대지미술'이라는 장르를 열고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선보인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가 한국에 왔다. 이들 부부는 4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더 게이츠'프로젝트 준비 과정을 강연한 뒤 인사동 갤러리를 둘러보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멋진 작업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만나자마자 첫 질문으로 던졌다. 크리스토의 대답은 단호하게도 "없다(Never)"였다. "우리는 한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때문"이란다. 지금 그들이 새롭게 올인한 작업은 '콜로라도 프로젝트'다. 래프팅 장소로 유명한 콜로라도주의 알칸사스강에 10㎞ 길이의 대형 은색 천을 설치하고, 그 밑에서 래프팅을 즐기게 한다는 계획이다.

"워싱턴DC.덴버주 등 11곳의 의회.카운티에서 허가를 받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심지어 콜로라도주측은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게 싫다'고 정색을 하고 말하더군요. 일러야 2010년에 그 장대한 광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들의 작업은 무모해 보인다. 힘들게 설치해 놓고는 단 2주 만에 철거해 버린다. "영원한 것이 어딨나. 우리 작품도 마찬가지"라는 게 이들의 철학이다. 철거한 작품을 팔아도 큰 돈이 되련만, 모두 재활용 공장 행이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가로지르며 나부끼던 주황색 천은 카펫 밑에 까는 깔개로 변신했다. 장 클로드는 "설치물을 팔면 집도 사고 비싼 보석도 살 수 있겠지요. 우리는 그 대신 프로젝트에 돈을 써요"라고 설명했다.

크리스토 부부는 작업을 할 때 외부 지원금은 전혀 받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그린 드로잉을 팔아서 충당한다. 드로잉은 개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데, 10년이 지나면 열배 이상 오를 정도로 인기있다.

인터뷰 말미에 장 클로드는 조그만 봉투를 보여줬다. 그 안에는 그간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천 조각들이 담겨 있었다.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러움, 작품에 대한 열정이 묻어났다. 고희를 넘긴 요즘도 하루 17시간 작업을 한단다. 이젠 편안히 쉴 때도 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37개의 작품은 허가가 안돼 포기했어요. 모두 우리 가슴에 남아 있죠. 언젠가는 꼭 보여주고 싶은 내 자식들이예요. 쉴 틈이 없지요."

박지영 기자 <nazang@joogn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 대지미술은=자연을 캔버스 삼아 예술행위를 하는 장르로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도시 공터에 밀밭을 가꿔 도시인에게 자연을 느끼게 하고 나무나 건물을 포장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는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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