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재벌규제 계획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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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는 3년 후 재벌 총수의 영향력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데 재벌 규제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위원회가 내부거래를 승인하는 제도 등을 통해 총수를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구조조정본부의 자금.인력.활동 내역을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대표적 재벌규제인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총수 일가의 의결권이 소유지분의 2배 이하이면서 의결권과 소유지분의 차이가 20%포인트 이하인 그룹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이 이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또 지주회사제로 전환하면 모든 계열사가 규제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LG그룹과 SK그룹 내 SK엔론 지주회사(계열사 14개)가 규제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출자를 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0일 이 같은 내용의 시장개혁 3개년 계획(로드맵)안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이 안을 토대로 의견수렴을 거쳐 12월 말 최종안을 만들 계획이다.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의 11개 민간 그룹의 총수들이 현재 보유 지분보다 6.1배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3년 후에는 이를 3배로 줄이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덩치(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적용하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지배구조의 질을 기준으로 규제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대신 부채비율이 1백% 미만이면 규제에서 제외되던 규정은 2005년에 폐지된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이 낮은 롯데그룹이 다시 출자 규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총수 일가의 지분 보유 현황.그룹별 지배구조 평가지수 등을 매년 공개하고 비상장사의 공시 의무가 강화된다.

또 그동안 규제를 하지 않았던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서도 출자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어서 기업들이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이상승(경제학)교수는 "로드맵에서 규제를 강화한 내용은 대부분 시장의 자율감시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정부 규제를 줄이고 시장의 자율규제를 확충하는 기본 방향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각론에선 의견이 엇갈려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배구조 평가지표가 자의적"이라며 "기업이 선뜻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러운 제도가 많아 사실상 출자 규제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김상조(한성대 교수)소장은 "최소한의 내용만 담긴 것으로 앞으로 재정경제부 등과의 협의에서 더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재벌 개혁의 후퇴를 우려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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