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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증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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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몸에 열이 나는데 그 원인이 전염병 때문인지, 단순한 장염 때문인지, 아니면 심리적 요인 때문인지 모르는 경우 첫 번째 처방은 일단 열을 내리는 것이다. 고열이 지속될 때 원인을 따지느라 시간을 지체하다간 자칫 환자가 위험한 지경에 빠질 우려가 있다. 여기서 고열은 증상(symptom)이고, 그 증상을 약화시키는 치료법이 대증요법(對症療法.symptomatic treatment)이다.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전부터 내려온 민간요법은 대부분 대증요법이다.

이에 비해 병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원인요법이다. 병을 근본적으로 고치려면 원인요법을 쓰는 게 당연히 맞다. 그러나 발병 초기의 위급한 상황에선 원인을 따질 겨를이 없고, 또 일부 질환은 아직 원인을 알 수 없거나 원인을 알더라도 확실한 원인요법이 개발되지 않았다. 독감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은 아직도 뚜렷한 원인요법이 없다. 그래서 대증요법이 필요하다. 몸이 아픈 이상 일단 드러난 증상부터 다스려 놓고 보자는 것이다.

문제는 만성적인 고질병이나 확실한 원인요법이 있는 질병에 무작정 대증요법만 쓸 경우 대증요법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거나 병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원인 치료를 하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을 큰 병으로 키우는 것이다.

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보면 만성 질병에 대증요법만 줄기차게 쓰는 돌팔이 의사를 보는 듯하다. 2003년부터 일부 지역의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돌팔이 의사는 이걸 위급상황이라 보고 즉각 대증요법을 동원했다. 투기단속에 나서고, 재건축을 억제하고, 주택거래 허가제를 도입했다. 일시적으로 값이 떨어지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욱 강도 높은 대증요법이 동원됐다. 세금 폭탄과 분양가 원가공개처럼 웬만해서는 잘 쓰지 않는 고단위 처방이 내려졌다. 주변에선 병의 근본 원인을 찬찬히 따져보고 적당한 치료법을 찾아보자고 했지만 돌팔이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급기야 집값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전셋값마저 올라 집없는 서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흡사 발목이 부은 데는 얼음찜질이 좋다고 얼음을 퍼부은 결과 전신에 오한이 들고, 발가락에 동상까지 걸린 격이다. 그러자 한 의사는 당당히 "(치료에) 실패했다"고 선언했고, 다른 의사는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 사이 또 다른 의사들이 대증요법을 처방하고 있었다.

김종수 논설위원